차범근·박지성·손흥민을 잇는 전설의 서막일지 모른다.
18세 ‘골든보이’ 이강인(발렌시아)이 26일(이하 한국시간) 스페인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라리가) 첫 선발 출전 경기에서 라리가 데뷔골을 터뜨렸다. 라리가 한국인 득점은 2013년 3월 박주영(당시 셀타비고)에 이어 두 번째다. 만 18세219일로 발렌시아 구단 사상 외국인 최연소 득점 기록도 세웠다.
동갑내기인 일본의 구보 다케후사(마요르카)가 지난 22일 헤타페전(2대4 마요르카 패)에서 데뷔 첫 도움을 올리자 이강인은 바로 다음 경기에서 득점으로 응수했다. 구보는 6월 레알 마드리드 입단으로 화제를 모은 뒤 1년간 임대 조건에 마요르카로 이적했고 세 번째 출전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작성했다. 그는 이강인이 데뷔골을 터뜨리고 팀의 3골에 모두 관여한 26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0대2 패)을 풀타임으로 뛰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강인은 이날 스페인 발렌시아의 메스타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 라리가 6라운드 헤타페와 홈경기에 선발 왼쪽 날개로 나섰다. 2018~2019시즌인 1월13일 바야돌리드전 교체 멤버로 라리가에 데뷔한 뒤 첫 선발 출전이었다. 새 감독 알베르트 셀라데스 부임 후 이날 전까지 교체 멤버로 모든 경기(챔피언스리그 1경기 포함 4경기)에 출전하며 조금씩 존재감을 키워온 이강인은 선발 중책마저 훌륭하게 소화하며 ‘셀라데스 황태자’로 입지를 굳힐 기회를 잡았다.
경기 초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발렌시아는 시작 45초 만에 선제골을 내주고 전반 10분 만에 주전 공격수 케빈 가메이로가 부상으로 빠졌다. 이때 이강인의 왼발이 발렌시아를 깨웠다. 날카로운 왼쪽 크로스를 수비수가 머리로 걷어냈지만 공은 멀리 가지 못했고, 막시 고메스가 시저스킥으로 골망을 갈랐다. 전반 30분이었다. 4분 뒤에는 오른쪽에서 다니 파레호와 주고받으면서 건넨 공을 파레호가 크로스로 연결했고 고메스가 헤딩골로 마무리했다. 전반 39분에는 직접 해결사로 나섰다. 오른쪽에서 로드리고 모레노의 낮은 크로스 때 논스톱으로 오른발로 깔아 차 3대1을 만들었다. 동료의 움직임을 보고 패스가 올 곳을 미리 찾아 들어가는 움직임과 수비 2명 사이를 통과하는 간결한 슈팅이 인상적이었다. 전반 종료 뒤 중계 카메라는 이강인의 얼굴을 오랫동안 따라갔다.
자신감이 오른 이강인은 특유의 탈 압박과 볼 간수를 선보였고 안정된 트래핑과 넓은 시야를 앞세워 과감한 패스를 찔러주기도 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데뷔골을 터뜨린 경기에서 승리를 챙기지 못한 것이다. 발렌시아는 후반 21분과 24분에 잇따라 실점해 3대3으로 비겼다. 1승3무2패(승점 6)로 리그 13위다. 이강인은 후반 28분에 교체돼 들어갔고 유럽축구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이강인에게 평점 7.3점을 매겼다. 멀티골을 넣은 고메스(8.1점)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다. 이강인은 “득점으로 팀에 도움이 돼 기쁘지만 승점 3을 가져오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6월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골든볼(MVP)을 수상하고 소속팀에 복귀한 이강인은 한동안 거취 문제로 속앓이를 했다. 유력해 보였던 임대 이적이 끝내 이뤄지지 않아 발렌시아에 남았고,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발렌시아 감독은 자신의 원칙대로 유망주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11일 토랄 감독이 경질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토랄 체제에서 올 시즌 라리가 출전 시간이 6분뿐이던 이강인은 셀라데스호 첫 경기인 15일 FC바르셀로나전에서 25분을 뛰는 등 꾸준히 기용되면서 경기 감각을 길러왔다. 셀라데스는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 감독 출신이다. 이강인은 28일 오후8시에 열릴 리그 3위 아틀레틱 빌바오전을 준비한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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