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은 자연과 인간에 대해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묻는 책입니다. 진화론은 그래서 위험하고 여전히 새롭습니다.”
최근 ‘종의 기원’ 정본(定本)을 번역한 장대익 서울대 자연전공학부 교수에게 첫 번째로 궁금했던 것은 지금 이 책을 선택한 이유였다. 찰스 다윈이 이 책을 처음 내놓은 지 정확히 160년이 지난 지금 한국 독자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리학이나 화학은 ‘어떻게’에 대해 얘기합니다. 자연의 많은 부분은 ‘어떻게’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새들이 어떻게 날고 개들이 어떻게 짝짓기를 하는지 설명합니다. 하지만 새들이 나는 이유, 개들이 짝짓기하는 이유는 ‘왜’라는 질문을 해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계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그 궁극의 질문을 사실상 처음, 제대로 던진 사람이 찰스 다윈입니다.”
-진화론이 위험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 직관에 도전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우리 직관은 세상을 창조주 관점에서 보기를 원한다. 누군가 이 세상을 만든 어떤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런 직관 대신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관점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기존 생각을 뒤엎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어떤 일에 이유를 대도록 만들기 때문에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진화론은 왜 여전히 새로운가.
△인문고전은 1,000년이 지나도 읽힌다. 과학책은 그렇지 않다. 과학책은 유통기한이 있다. 이 책은 과학책이지만 다르다.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자연이 왜 이렇게 정교한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세상의 운행방식이나 자연의 규칙 등에 대해 알고 싶은데 ‘종의 기원’을 통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자연에 대한 문맹을 탈피하는 데 필요한 책이다. 더 나아가 세상은 진화론적 관점을 생물학에 적용하는 데서 벗어나 지리학·경제학·사회학·심리학·미학 등으로 확대해왔다. 세상의 수많은 학문 분야가 ‘종의 기원’에서 제시하는 진화론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 책이 쓰인 지 16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계속 다른 학문에 영향을 주며 새로워지고 있다.
-진화론은 다른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나.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가 크다. 옛날에 비해 더 잘사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헬조선’이라며 아이를 낳지 않는다. 진화론적으로 설명해보면 동물 세계에서는 주변에 자기와 같은 종의 개체가 넘쳐나면 출산하지 않는다. 낳아봤자 경쟁이 치열해 살아남을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면 인구밀도 문제다. 동물은 이럴 때 출산 대신 자기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힘을 쓴다. 자기의 위상을 더 높인 다음 짝짓기하는 게 번식에 더 유리하다. 이게 진화적 전략이다. 한국 사회에 적용해 보면, 인구밀도가 높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서울은 0.8명 수준으로 더 낮다. 서울은 주변에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서울의 복지를 좋게 하면 할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사람들은 출산을 더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서울시장이 출산대책으로 주거상 혜택을 비롯해 다양한 복지만 제공하는 것은 잘못이다. 저출산 문제를 복지만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되며 그 전에 경쟁에 대한 지각부터 해야 한다.
-복지부 장관이 된다면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살기가 좋아졌지만 경쟁의 관점에서는 더 치열해졌다. 모두가 같은 시기에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간다. 취직도 동시에 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도 동시에 한다. 시간의 축으로 보면 계속 경쟁하는 구조다. 다른 나라를 보면 중간에 수많은 이탈이 생긴다. 고교를 졸업하고 취직하는 사람도 있고 대학 가는 사람도 있다. 공간의 축으로 보면 서울이나 도시로 너무 많이 몰린다.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에서 경쟁을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 서울대를 지방으로 보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요즘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다투는 정도가 심한 것 같다. 진화론이 이들에게 깨우침을 줄 수 있을까.
△진보는 좋은 사회, 평등한 공동체 등 훌륭한 생각을 내세운다. 문제는 구현이 어렵다는 점이다. 인간은 훌륭한 생각을 좋아하지만 생존과 번식에 불리한 환경과 행동은 싫어한다. 진보는 이런 점을 살피지 않고 ‘사람들이 훌륭한 생각을 왜 따르지 않을까’라며 당혹스러워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보수는 자유·시장·경쟁 같은 기존 질서를 지키고 싶어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잘 굴러가게 하고 사회도 더 좋은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윈은 자연계의 약육강식을 보며 ‘신이 존재한다면 왜 저런 고통을 그냥 둘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경쟁 속에 숨은 협력의 사례, 즉 개미나 벌 같은 사회성 동물의 협력 행동을 관찰하며 경쟁도 협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책 초반에 보면 ‘사용의 효과(effect of use)’를 인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윈이 용불용설을 받아들인 것 아닌가.
△젖소의 젖을 짜 우유를 생산하는 나라의 젖소는 그렇지 않은 나라의 젖소보다 더 크고 발달한 젖통을 물려받는다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용불용설은 라마르크, 진화론은 다윈 이렇게 배웠지만 실제로 다윈은 용불용설도 진화 메커니즘의 하나로 생각했다. 사실 ‘종의 기원’은 초판에서 마지막 판인 6판으로 갈수록 자연선택의 입장이 후퇴하는 감이 있다. 결론적으로 다윈은 자연선택을 진화의 주요 동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연선택만 고집한 것은 아니다.
-진화론은 이론이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검증을 거쳐야 할 이론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론은 이론이 되기 전까지 가설로 존재한다. 증가가 불충분하고 반대증거가 있을 때 가설이라고 한다. 진화론은 가설 차원을 훨씬 넘어섰고 수많은 경험적 증거로 입증돼 이론 단계에 이르렀다.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이 제시한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보면 진화론은 그 틀로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있는, 말하자면 도그마 같은 것이다.
-진화론이 최고의 이론이라고 한다면 특히 우리나라에 널리 펴져 있지 않은 이유는 뭔가. 일반인은 왜 진화론을 잘 모르나.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상황일 수 있다. 기독교의 힘이 센 곳은 진화론을 믿지 않는 비중이 크다. 호주나 미국, 심지어 다윈이 태어난 영국에서도 진화론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적게는 20%, 많게는 50% 정도 된다. 우리는 40%가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교 생물 시간에 딱 한 번 잠깐 나올 뿐이다. 우리나라는 진화론 전공자도 거의 없다. 진화론을 대학 수준에서 가르칠 수 있는 학자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실용적인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대중적인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사람들이 그동안에는 생존을 위해 살아오다 점점 인간의 기원은 무엇인지 등을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물은 처음에 어떻게 생겼나
△생물학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미국의 스탠리 밀러라는 학자는 원시 지구의 대기에서 유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험으로 재현해봤다. 유리관에 메탄 · 암모니아 · 수소 · 헬륨 · 수증기 들을 혼합해 넣고 번개 대신 전기 스파크를 일으켰더니 유기물이 생성됐다. 하지만 이 실험은 원시 지구의 대기물질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론생물학에서는 자기복제자가 어떤 조건에서 나올 수 있는지 모델링하는 연구를 하기도 한다.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 대를 거듭하며 진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성을 진화론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동물이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하나의 단위를 집단 크기라고 한다. 침팬지는 50마리 정도 된다. 어느 곳에 침팬지 100마리가 있으면 2개 그룹이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사람은 이 숫자가 150명 정도 된다. 이 정도 규모에서는 분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다른 개체의 마음도 읽고 배신자도 관리해야 한다. 한 집단에 이기적인 개체가 있으면 그 개체는 생존에 유리하지만 집단은 불리해지며 결국 붕괴한다. 이기적인 개체를 처벌하는 집단은 유지되며 생존과 번식에 유리해진다. 이런 특성이 내면화해 다른 사람을 돕는 성향이 생겼다. 길게 보면 살아남는 전략이었다.
-진화를 받아들이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신(神)의 개념과 충돌한다. 신을 믿나.
△개인적으로 신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믿음이다.
-지구에 사는 절대다수의 사람이 신을 믿는다. 이유가 뭔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왜 생겼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세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는 개인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수렵시대에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짐승을 많이 잡을 수 있는지, 또는 이 짐승을 잡을지 말지 등 수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 이때 “난 계시를 받았어”라고 하는 순간 그런 인지 부담이 줄어든다. 두 번째는 집단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신이 말하는 규범, 예를 들어 ‘서로 사랑하라’ 같은 것은 집단의 응집력을 높여준다. 마지막 하나는 어떤 현상이 벌어질 때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 제공자를 찾는 특성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때 이 원인 제공자는 자연스럽지 않을수록, 인간의 능력을 초월할수록 믿기가 쉬워진다.
-한국은 신을 믿는 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센 것 같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중에서 보면 종교, 특히 개신교의 힘이 센 것 같다.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가 이슬람으로 치면 근본주의적 성격이 커 율법적이고 배타적이었다. 그래서 더욱 진화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he is…
1971년 대전에서 태어난 장대익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옛 정밀공학과)를 졸업한 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매료돼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진학해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을 읽고 진화에 눈 떠 서울대 행동생태연구실에 합류한 뒤 진화이론과 인간 행동을 공부했다.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생물철학과 진화심리학을,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에서 침팬지의 인지와 행동을 연구했다. 저서에 ‘다윈의 식탁’ ‘다윈의 정원’ ‘울트라 소셜’ 등이 있고 역서에 ‘통섭(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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