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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트럼프형 오작동 지도자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종파 정치 영향 포퓰리즘 확산

대중, 법 어긴 지도자에게 찬사

정치인 소셜미디어로 추종자 늘려

'민주주의 침체' 세계 곳곳서 발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실제로 탄핵을 받아 마땅한 잘못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중대한 잘못을 범했다는 사실 자체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 않을까.

그는 정적의 비리 혐의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며 외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이는 대통령후보 시절 트럼프와 크렘린의 유착 여부에 수사 초점이 맞춰졌던 러시아 스캔들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이번 사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최고지도부의 정치생명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미국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반복적으로 보여준 민주적 규범과 법의 위반이라는 일관된 패턴의 일부다. 얼마 전 공개된 로버트 뮐러의 최종 보고서는 트럼프가 특별검사의 수사활동을 축소하거나 중단시키려 시도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외에도 트럼프는 이민과 관련한 그의 어젠다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범법행위를 저지른 전직 고위관리들의 사면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 정부 수사기관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물론, 정적들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며 노골적인 외압을 가하기도 했다. 또한 의회가 발부한 소환장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세금신고서 등 재정 관련 자료들을 넘기라는 의회의 거듭된 요청을 거부했으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업을 키웠다. 그는 사법부와 언론에 공격을 가했으며 수시로 언론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웠다.

트럼프는 특히나 고약스러운 본보기에 해당하지만, 그의 그릇된 행동거지는 글로벌 트렌드와 일치한다.

예를 들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5주간의 의회 정회’라는 대단히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고 이에 맞서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의 만장일치로 ‘위법’ 판정을 내렸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자국 소수계에 공포감을 안겨주는 언행과 통치로 자국의 세속문화를 허물고 있고,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사법절차에 구애받지 않는 치외법권 살인을 찬양하며 고무하고 있다.

게다가 터키와 헝가리의 최고 정치 지도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과 빅토르 오르반도 일당지배(one-party rule) 혹은 일인통치(one-man rule)를 지원하는 쪽으로 헌법을 개정했다.

지금까지 숱한 학자들과 작가들이 ‘민주주의의 침체’를 연대기로 정리했으나 지구촌 곳곳에서 이처럼 유사한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왜 발생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줄 근본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호주 멜버른대의 정치학자 로베르토 스테판 포아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는 야스차 뭉크는 지구촌 곳곳에서 독재자들을 향한 열망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엮어 책으로 펴냈다.

그들에 따르면 1995~2014년 의회의 견제나 선거에 개의치 않는 ‘강력한 지도자’를 보고 싶어 하는 유권자들의 비율은 미국의 경우 거의 10%포인트, 스페인과 한국에서는 20%포인트, 러시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25%포인트가량 증가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추측건대 이 같은 현상은 현재 우리가 경제와 테크놀로지, 인구분포와 문화적 측면에서 대전환기를 살아가고 있으며 이처럼 격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감과 초조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중은 기존의 제도와 엘리트 지배층, 혹은 확립된 이념이 더 이상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미국 여론조사 업체 퓨리서치가 러시아와 헝가리까지 포함한 27개 민주국가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무려 21개국 국민의 과반수가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건 변화를 거의 보지 못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다보니 대중은 그들의 공포심을 이용하고 희생양을 만들어가며 그들을 대신해 과감한 정책을 추진하겠노라 약속하는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여기에 “우리 각자는 모두 한 팀에 속해 있고, 우리 팀은 늘 옳다”는 종파정치의 현실까지 보태지면서 포퓰리즘은 기세를 더해간다.

종파주의는 제도와 규범과 법치의 적이다. 결국 법치주의의 요체는 적과 친구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가 돈이 될 때(When Crime Pays)’라는 최근 저서에서 저자인 카네기국제평화기금(CIS)의 선임 연구원 밀란 비슈나브는 범죄혐의로 기소된 인도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진다고 꼬집었다.

종파정치에서 대중은 실제로 법을 어긴 지도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들이 종족을 돕기 위해 법을 어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의 정당은 포퓰리스트와 선동주의자들을 막아내고 그들의 멤버들에게 특정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요하는 수문장 겸 규범 설정자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구식 집단인 정당은 기업가적 정치(entrepreneurial politics)의 시대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이제 정치인들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한때 정당들이 순화시키려 노력했던 분노와 감정을 부추기면서 대중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자금을 모으고 추종자 수를 늘린다.

미국의 포퓰리즘을 가능하게 만든 세력은 공화당이다. 포퓰리즘의 부흥은 뉴트 깅리치가 조지 H W 부시와 밥 돌로 대표되는 구 공화당을 차꼬(형벌 도구)에 매인 허약한 수용주의자(accommodationist) 집단으로 맹비난하면서 시작됐다.

오늘날 미국의 포퓰리즘을 한층 강화한 장본인은 공화당의 어젠다를 위해 대법관 지명과 같은 국가적 중대사와 관련해 규범마저 서슴없이 어긴 상원의 공화당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이다.

1960년대 미국정치를 연구한 정치사학자 클린턴 로시터는 그의 책을 통해 이렇게 선언했다. “민주주의가 없으면 미국도 없고, 정치가 없으면 민주주의란 없으며, 정당 없이는 정치도 없고, 타협과 절충 없이는 정당도 없다.”

오늘날 미국은 민주주의의 파괴에 몰두하기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공화당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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