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먹고 싶은 음식이나 제일 좋아하는 맛집을 알려주세요’
신전떡볶이와 허니콤보, 뿌링치즈볼, 명랑핫도그…생각나는 음식들을 입력했다. 간단한 설문을 마치자 ‘자유로운 영혼형’이라는 성향으로 판정이 났다. 통화연결 버튼을 누르면 인공지능(AI)이 앱에 접속 중인 사람 중 비슷한 성향이나 답변을 작성한 사람들을 무작위로 띄웠다. 한 명을 골라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7분간의 무료통화가 연결됐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에 허니콤보와 뿌링클치킨이 떴고, 상대방의 얼굴과 이름 등은 전혀 모른 채 통화가 시작됐다.
상대가 적어놓은 답변을 보며 서로 좋아하는 치킨에 대한 예찬론을 펼쳤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상대방은 “대화를 더 하고 싶은데 괜찮냐”며 물었고 괜찮다 답하자 그가 유료로 산 다이아몬드로 통화가 연장됐다. 그렇게 총 27분 동안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A 데이팅 앱을 통해 새로운 사람과 공통 관심사로 무려 27분이나 수다를 떤 경험은 신선했다. 억지로 상대방에게 맞춰줄 필요도 없고 전화를 계속 이어나가야만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데이팅 앱의 위력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나에 딱 맞게 매칭된다’ 각양각색 데이팅 앱들
데이팅앱은 앱 사용자들을 말 그대로 ‘짝지어주는(매칭해주는)’ 앱이다. 이름(혹은 별명),나이,사진 정도만 등록하면 새로운 사람과 쉽게 연결된다. 최근에는 동성애 여부나 성적 취향까지 쓸 수 있어 사적이지만 그만큼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무겁지 않고 가볍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프로필에서도 드러난다. ‘ㅅㅇ’ ‘YS’ 등 자신의 이름을 초성으로 쓰거나 ‘David’ ‘James’ 등 영어 이름을 사용한 프로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사진도 얼굴 전체를 다 공개하지 않기도 한다. 자신이 키우는 것으로 보이는 강아지와 고양이 사진도 등장했다. 프로필 사진에 자신의 몸근육 사진이나 성적취향 그래프를 올려놓은 경우도 있었다. B 데이팅 앱의 경우 짧은 소개 한두 줄로 자신을 소개하고 카드섹션을 넘기며 프로필을 확인해 매칭을 시도할 수 있다. 호감 가는 사람에게 하트를 보내고 상대방도 하트를 누르면 서로 채팅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GPS 기능을 통해 상대방이 내 위치에서 몇 km 근방 이내에 있는지 볼 수 있어 동네 사람과도 만날 수 있다.
C 데이팅 앱은 인공지능 커플 매니저가 사용자의 취향을 물어봐서 높은 연관성이 있는 사람을 직접 연결 시켜준다. 일종의 ‘인공지능 주선자’ 기능을 톡톡히 도맡아 하는 것이다. D 데이팅 앱은 사용자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호감을 느꼈던 이성의 사진을 올리면 이와 유사한 얼굴을 가진 다른 사용자의 프로필을 보여주기도 한다. 앞서 직접 경험해본 A 데이팅 앱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을 모아 랜덤으로 파트너를 지정해 7분간 무료로 통화할 기회를 주는 앱이다. 메시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알아갈 수 있다.
◇극과 극 후기 “데이팅 앱의 명과 암은...”
흔히들 데이팅 앱은 가볍게 만나는 거라 ‘결과는 다들 좋지 않을 거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이팅 앱을 잘 활용한 이들도 있다. 주부 김소망(가명·30)씨는 데이팅 앱을 통해 결혼까지 골인했다. 친구의 권유로 데이팅 앱을 설치한 그는 교회 청년들이 가입할 수 있는 앱이라 걱정보다는 기대가 컸다고 한다. “친구나 중매인을 통하지 않기 때문에 혹여 만남이 잘되지 않더라도 불편함이 없어 좋았어요. 편하게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그녀는 프로필 그대로 순수해 보이는 공대 오빠였던 지금의 신랑과 1년간 연애 후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자신을 동성애자(퀴어)라고 밝힌 김사랑(가명·23)씨는 캐나다 교환학생 시절 데이팅 앱을 깔았다고 했다. 그는 “사실 외국에서는 데이팅 앱이 데이트를 빙자한 원나잇스탠드(one night stand·하룻밤 자며 성관계를 하는 것)를 하기 위한 것으로 유명하죠. 그래도 지금 사용하는 데이팅 앱은 원하는 성별을 자신이 설정할 수 있고 퀴어친화적이어서 좋아하는 앱”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너무 오픈하지 않는 선에서 간단한 소개만으로도 원하는 상대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라고 장점을 꼽았다.
하지만 데이팅 앱으로 인해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있다. 취업준비생 박세종(가명·25)씨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데이팅앱으로 대화할 때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나고 보니 자신을 사이비 종교로 영입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신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자신의 친구도 합류한다고 하더니 심리검사를 해보자고 하더라”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낌새를 차린 박 씨는 그 현장을 빠져나왔지만 다시 생각해도 철렁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대학생 이모(23)씨는 처음에 프로필 설정을 제대로 안 했다가 낭패를 봤다. 이름과 나이만 밝혔더니 “섹스파트너” “FWB(프렌즈 위드 베네핏-서로의 필요에 의해 가끔 성관계를 맺는 친구)” 등의 관계를 맺고 싶다는 메시지가 왔다. 처음 데이팅 앱을 깔아봤다는 그는 “이후 프로필에 이러한 관계가 싫다고 올려서 그 이후로 비슷한 메시지가 안 오긴 했는데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2030세대 양면적 심리가 데이팅 앱 확대요인”
데이팅 앱을 따라다니는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정보 유출 및 도용이다. 지난 2015년 한국소비자원이 소셜데이팅 앱 사용자 500명을 조사한 결과에 응답자의 49.8%가 “앱을 사용하다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그 중 ‘원치 않는 연락’을 받은 경우가 24.4%로 가장 많았고, ‘개인정보 유출’ 경험이 있다는 경우도 16%였다. 올해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설문 결과(만 19~44세 남녀 1,000명 대상) 77.8%가 “불건전한 목적으로 데이팅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답했다. 데이팅 앱으로 만나는 상대방이 신뢰 가지 않을 것 같다는 비중도 63.1%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팅 앱의 인기는 식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상위 20여개 데이팅 앱 연매출은 2015년 약 100억원에서 2017년 약 1,000억원으로 열 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추산됐다. 글로벌 앱 분석업체인 센서타워에 따르면 국내 데이팅 앱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2,000억원 가량으로 3년 이내에 5,000억원 대로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손동영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피로감과 비용, 금전적인 부담의 최소화를 이끌어내려는 심리와 주체적으로 관계를 이루어나가려는 심리가 양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데이팅 앱 시장 확대의 요인”이라며 “1인 가구, 비혼주의가 늘고 있지만 과거와 마찬가지로 청년세대들 역시 관계의 필요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신혜인턴기자 happysh040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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