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최소한 지난 8월 수치인 49.1을 넘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블룸버그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일(현지시간) 공개된 제조업 PMI는 8월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되레 47.8로 하락하면서 10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경기만 놓고 보면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무역전쟁의 여파로 미국의 제조업 경기가 생각보다 빠르게 식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내외 공산품 수요가 위축되면서 상품판매와 고용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외수 경기의 선행지표인 신규수출수주는 6월에 50을 웃돌던 수준에서 9월에는 41.0으로 1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크리스 윌리엄슨 IHS마킷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더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기업들은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와 세계 경제 둔화 조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문제로 내년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중국이 올해 성장률 6%를 수성하기 쉽지 않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 경제도 비틀거리는 등 글로벌 경기위축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최대의 자동차 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의 대규모 파업 장기화로 미국 자동차 산업이 입는 타격도 만만치 않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제조업 경기둔화가 서비스업으로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토르스텐 슬로크 도이체방크 AG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제조업 데이터를 보면 제조업 둔화가 서비스업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미국의 성장률 급락은 불가피해진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연 2.8%에서 2.4%로 0.4%포인트 낮췄지만 블룸버그는 내년 상반기 성장률이 1%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1940년대 이후 미국의 경기 확장기에 실질 GDP 성장률이 2%를 밑돌면 거의 항상 경기침체가 뒤따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이후 경기침체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힘들다.
소비와 함께 미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고용 부문도 심상치 않다. 2일 발표된 ADP 전미고용보고서에 따르면 9월 민간 부문 신규고용은 시장에서 예상한 14만명보다 5,000명 적은 13만5,000명에 그쳤다. 게다가 8월 신규고용의 경우 당초 지난달 발표된 19만5,000명에서 무려 3만8,000명 줄어든 15만7,000명으로 이날 하향 조정됐다. 다만 시장에서는 4일에 나올 비농업 신규고용지표와 함께 종합적으로 고용시장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상황을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물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소비가 아직 탄탄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탠리 애머스트피어폰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소비지출과 노동시장이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미국의 경기전망은 여전히 양호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단 소비가 꺾이면 미국 경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역사상 가장 긴 팽창이 그대로 유지될지의 관건은 소비자들이 제조업 부진을 상쇄할 만큼 지출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통화당국에 대한 압력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제롬 파월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달러가 강해지도록 했다”며 “우리의 제조업체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기준금리가 너무 높다”며 “연준은 그들 자신의 최악의 적”이라고 깎아내렸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일본의 수출규제에다 최대 수출시장 가운데 하나인 미국이 흔들리면 올해 2% 성장 달성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감소한 수출도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정부는 2%대 초반 성장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미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2.0%에서 1.8%로 내린 상태다. 블룸버그는 “국제무역 상황을 가장 먼저 반영하는 한국의 물가가 낮아졌고 호주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추면서 디플레이션의 망령이 되살아났다”고 평가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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