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에는 4~5일 스웨덴에서 열리는 북미 간 실무협상 재개 직전에 유사한 시나리오가 다시 불거졌다는 점에서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의혹’으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정치적 성과를 내기 위해 섣부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핵동결이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과정 중의 하나라고 볼 수는 있지만 여전히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정의와 로드맵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급한 처지에 놓인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의 과도한 제재 완화 및 체제 안전 보장 요구를 들어줄 경우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는커녕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만 사실상 인정하는 셈이 될 개연성은 상당하다.
더구나 그간 북한 핵 개발의 돈줄 역할을 해온 핵심 품목에 대해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제재 완화를 해줄 경우 북한이 이를 다시 핵·미사일 추가 역량 강화에 이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미가 어렵사리 다시 마주하게 된 데 대해 마냥 환영의 뜻만 밝힐 수 없는 이유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아직 협상 자체를 예단하기는 이르고 전체적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가 중요하다”며 “하지만 비핵화 로드맵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단계적 비핵화가 이뤄진다면 우리에게 분명히 손실이 있다”고 말했다. 또 신 센터장은 “단계적 비핵화는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막으면서 상황을 관리해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하지만 비핵화가 불투명해진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 보유가 고착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일단은 “언론플레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중요한 내용이 이미 ‘합의’됐다면 미국이든, 북한이든 미리 관련 내용을 굳이 노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그러면서도 남 교수는 “사실이라면 걱정이 된다”며 “제재 완화를 해버리면 순식간에 김정은의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에 핵 개발이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제재 완화를 해주면 현금이 들어간다”며 “그러면 첨단 장비를 못 사서 주저하고 있다가 개발에 탄력이 붙어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복스가 또 다른 상응조치로 지목한 한미훈련 취소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복스는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지난 6월 판문점에서 종전선언 및 3차 정상회담 이후 수주 내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약속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박원곤 한동대 지역관계학과 교수는 “북한이 하노이 노딜 이후 체제안전 보장을 계속 주장하는 것으로 봐서 이번 협상에서 연합훈련 영구 중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반드시 요구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연합훈련이 폐지되면 한미동맹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고 주한미군 주둔 의미도 축소된다”며 “우리가 전시작전권 전환을 준비하는 상황에서도 연합훈련이 필수적인데 컴퓨터 시뮬레이션만 돌리고 훈련은 하지 않으면 대비 태세를 어떻게 유지하겠냐”고 지적했다.
남 교수 역시 “한미훈련이 없어지면 동맹이 없어지고 그냥 보통 국가 관계로 격하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남 교수는 “훈련을 하지 않는 군사 동맹은 유사시에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미 간 협상이 한국의 안보 공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신 센터장은 “당분간 우리 안보 이익을 동결시킴으로써 비핵화라는 양보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어느 선까지 양보하느냐에 따라 미국에 얼마나 높은 안전보장을 요구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 너무 몸값을 낮췄다. 비핵화 협상에서 한발 물러선 선물을 해서 우리의 이익이 투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한반도 지역은 고위험 지역이기 때문에 주한미군이 8개월씩밖에 주둔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연합훈련을 6개월마다 했던 것인데 지금 하지 않고 있다”며 한미 간 군사 공조의 약화를 우려했다. /정영현·양지윤·김인엽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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