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4일 내각 격인 행정회의를 소집해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를 발동한 후 이를 근거로 복면금지법 시행을 결의·공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복면금지법은 공공집회나 시위 때 가면·마스크 등을 금지한 법이다. 한 소식통은 “복면금지법은 결의 후 즉시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긴급법은 영국 식민지 시절인 지난 1922년 제정된 법규로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행정장관이 홍콩 의회인 입법회 승인 없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시민의 행동을 제한하는 법률을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긴급법이 적용되면 행정장관은 체포, 추방, 압수수색, 교통·운수 통제, 재산 몰수, 검열 등 ‘비상대권’을 부여받는다. 사실상 계엄령인 셈이다.
긴급법을 발령한 홍콩 정부는 일단 복면금지법을 시행한 후 이후 비상조치 확대 여부를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에서 긴급법이 발령된 것은 1967년 반(反)영국 폭동 때 단 한 번뿐이다.
최근 시위가 반중국·민주화 운동으로 흐르면서 중국의 불만이 커졌고 홍콩 내 친중파 단체들도 경찰의 힘만으로 한계에 이르렀다며 긴급법을 발동해 복면금지법과 야간통행금지 등을 시행할 것을 주장했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에서 “긴급법 적용이 홍콩의 국제평판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지만 열흘 만에 이를 뒤집는 셈이다.
즉 긴급법 발동은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마친 중국 정부가 시위대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다는 의미라고 SCMP는 풀이했다. 중국군이 시위대 무력진압에 나서기 전에 일단 홍콩 정부가 최대한의 강권을 발동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국경절 열병식 연설에서 “평화통일·일국양제 방침을 견지해야 하고 홍콩과 마카오의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홍콩 시위대에 경고한 바 있다.
아울러 홍콩 경찰은 이날 1일 국경절 시위 때 경찰이 쏜 실탄에 맞은 고등학생 청즈젠을 포함해 18~36세 시위 참여자 7명을 폭동 및 경찰공격 혐의로 기소했다. 국경절 시위로 체포된 사람은 269명으로 6월 초 송환법 반대 시위 시작 후 하루 기준으로 최다 체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93명은 학생이었다.
다만 이러한 중국 정부의 공세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홍콩 시위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중국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위를 취재하던 인도네시아 여기자가 영구 실명하면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홍콩 정부의 긴급법 발동 결정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의 미국 의회 통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 법안은 미국이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의 특별지위 지속 여부를 결정하고 홍콩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한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미국 비자 발급 금지 및 자산동결 조치를 내리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에서 여야의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이 법안은 이달 중순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이러한 미국 등의 움직임을 ‘외세의 개입’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미중 무역전쟁 충격과 내수 부진으로 경기둔화가 심화되고 있는 중국이 이러한 압력을 견디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미중 고위급 무역회담이 재개되기로 예정돼 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홍콩 시위 사태는 이미 홍콩 내에서 조용히 해결될 단계를 넘어섰다”며 “중국과 미국의 힘겨루기에 따라 상황이 좌우될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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