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 10곳이 특별연장근로를 요청한 내용은 공공·민간 분야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미세먼지 대응·명절 임시 열차 외에도 적조 방제·태풍 대비 등도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가능했지만 ‘예방적 차원’에서는 불가하다는 검토 의견이 나왔다. 민간기업들의 경우 갑작스러운 물량 수주나 스케줄 변경에 따른 연장근로 필요성은 물론이고 공공부문의 수요에도 특별연장근로의 문턱이 너무 높은 셈이다. 정부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경영계는 ‘불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관계부처의 사례를 보면 공적 측면이 강한 경우에도 고용부는 재난 등 사고가 발생한 경우·재난 등 사고발생이 임박해 이를 예방하는 경우 두 가지 외에는 인가가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국토교통부는 태풍·홍수·호우의 경우 하천 시설물 순찰, 점검을 위해 비상근무를 실시해야 한다고 검토를 요구했지만 고용부는 ‘자연재해 발생 또는 임박 시’에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해양수산부도 기상상황이 가변적이므로 해양환경 관리 등에 일시 근무가 필요하다고 요청했지만 고용부는 ‘시급성, 피해가 큰 경우에 제한적으로 가능하다’고 검토 결과를 보냈다.
정부가 산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제출한 사례에서도 ‘예상치 못한 업무 발생에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불가 의견을 받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화학 업체가 정기 보수를 하거나 공장이 비상 가동 정지되면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해야 한다고 고용부에 설명했지만 고용부는 ‘정전·화재·누출 사고 수습에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제조업의 긴급 물량 대응과 연구개발 업무의 발주처 요구, 연예인 스케쥴 변경으로 인한 탄력적 대응에 필요하다고 역설했지만 고용부는 이 역시 불가하다고 결론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 정보기술(IT) 서비스 개발 결과 시험에 집중적인 근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고용부는 인가 낼 수 없다고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특별연장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던 지난해 7월에 관계 부처의 검토 요청이 몰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그해 6월 허용범위 확대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하고 중소기업중앙회는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경우 주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하는 등 52시간 근로제의 보완입법으로 주목받았다. 다만 고용부는 특별연장근로의 인가 기준을 재해·재난으로 묶은 바 있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 아래에서도 특별연장근로 신청 건수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7년 22건이던 신청 건수는 주 52시간제가 시작된 지난해 270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8월까지의 누적건수가 312건으로 이미 작년 기록을 훌쩍 뛰어 넘었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노동계의 눈치만 보면서 특별인가연장근로 요건 확대를 검토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정기 국회 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 확대의 통과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노사정 합의로 일별로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때 기존 일별로 정하던 근로시간을 주별로 정할 수 있도록 해 유연근로제 수요에 상당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탄력근로제를 통과시켜 놓고 추이를 보며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의 요구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이 전날 여야 대표 및 환노위 위원들에게 유연근로제 확산 방지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의 정책 건의서를 제출하는 등 노동계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경영계는 “탄력근로제만으로 대응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탄력근로제 외의 유연근로제를 주장하는 것은 불시에 생기는 연장근로 수요가 너무 다양하고 많기 때문”이라며 “일감이 몰리는 시기를 예측할 수 없는 기업의 경우 신속하게 쓸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본 수출 규제를 ‘재난에 준하는 상황’으로 해석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 주고 공공기관과 기업의 다른 급박한 상황은 재난·재해가 아니니 인가해 줄 수 없다는 고용부의 법 해석도 고무줄 잣대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