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두고 대한민국이 찬반 양론으로 두 동강이 나면서 경제·외교·안보 등 국가 중대사까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조국 블랙홀’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조국 사태에 대해 청와대는 침묵하고 민생에 신경 써야 할 정치권은 민심만 분열시키는 ‘거리 정치’에 몰두하는 사이 대한민국이 차츰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폭주하는 ‘거리의 정치’를 멈추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경제·외교·안보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조국 블랙홀’이 낳은 비정상 궤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론이 높다.
6일 서경펠로(자문단)들은 조국 사태로 국론이 분열하는 원인을 문 대통령과 여당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 사태의 잘못은 여당에 있다”며 “(여당이) 행정부 일원인 양 청와대 일이면 어떻게든 편들면서 국민 분열이라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조 장관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혐의가 있음에도 임명을 강행하고 나아가 검찰 수사를 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오만이 국민 분열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조 장관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나 도덕적 결함이 제기됐으나 청와대는 ‘강행’이라는 단순 전략으로 일관했고 여당은 검찰 수사를 방해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등 ‘자기편 챙기기’에 몰두하면서 국민적인 분노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지식인들은 대의정치를 실현해야 할 정치권마저 거리 정치에 휩쓸리면서 무너져 가는 국가 경제·안보를 구할 ‘골든타임’을 마냥 흘려보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인실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은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늘 나오는 것이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현재의 경기 여건은 좋지 않은데 정치적 갈등은 몇 배나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학자·전문가들의 경고에도 국회는 들은 척도 않고 거리 정치에만 몰두하는 상황이 한동안 계속될 수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도 “광장으로 뛰쳐나간 여야가 곧 총선이 다가오는데 경제 활성화와 민생을 위한 법안 논의를 진지하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한 것은 대한민국에 있어 위협적이고 심각한 문제”라며 “미중 갈등이 깊어지는 등 한국 외교가 최근 몇십 년 사이 가장 어려운데도 국가 전체가 두 달째 장관 한 명의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고 걱정했다.
조국 사태에 이은 국론 분열이 두 달째로 접어들면서 국회 내에서도 ‘이제는 민생 챙기기 등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원로 정치인을 중심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민생이 어려운 때 여야가 정쟁에만 몰두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직무유기’라는 취지에서다. 박지원 대안정치연대 의원은 5일 본인 페이스북에 “광주 시민들과 조국 얘기를 했다”며 “서초동 집회의 300만 시민에 놀라면서도 피로도 호소했다”고 밝혔다. 특히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소를 키워야 합니다”는 말을 통해 국회의원들이 논쟁을 종식시키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지난 4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연이은 가을 태풍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국민의 상심과 피해가 너무 크다”며 “국민은 국회와 정치권을 바라보고 있는데 국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 분노에 가장 먼저 불타 없어질 곳이 국회라는 점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며 “이제는 국회가 답을 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자중하고 민생과 국민 통합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조속한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드높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대통령은 수사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조 장관의 직무를 정지하는 등 유보의 차원에서 찬반 양측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아울러 여야 원로나 보수·진보 진영의 비중 있는 인물들이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최영기 전 원장은 “조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와 별개로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당정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며 “국회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대신 2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합의한 탄력근로제 확대처럼 어느 정도 접점이 이뤄진 법안부터 처리하는 게 그나마 마지막 남은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현덕·하정연·김인엽·나윤석·한재영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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