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반중국 시위로 번지면서 홍콩에 사는 중국 본토 출신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단지 중국 본토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설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으며 중국인이 운영하는 사업장은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이후 2017년까지 150만 명의 중국 본토인이 홍콩으로 이주했다. 이들의 대규모 이주에 홍콩 집값이 치솟고 일자리 경쟁도 치열해져 중국 본토 출신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시위 사태로 그 감정은 이제 ‘증오심’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시위 때는 중국은행, 중국건설은행 등 중국계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집중적으로 공격당하면서 홍콩 시내 전체 3,300여 개 ATM 중 10%가 파손됐다. 시위대는 중국인이 소유한 식당, 제과점, 약국 등을 공격했고, 몽콕 지역의 중국 휴대전화 샤오미 매장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폭행 사건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일 홍콩 금융가인 센트럴에서 JP모건체이스 직원이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라고 말했다가 구타를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온라인에 오른 동영상을 보면 홍콩 사람들이 쓰는 광둥화(廣東話)가 아닌 푸퉁화를 쓰는 이 직원은 시위대가 ”본토로 돌아가라“고 하자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다“라고 응수했다가 한 시위자로부터 폭행당했다. 최근 시위 때 한 중국인은 시위대 중 한 명이 일장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홍콩 점령을 거론하며 이를 비판하다가 심하게 구타당하기도 했다.
지난 4일 밤에는 시위대 20여 명이 홍콩 판링 역에 정차한 중국 본토행 열차의 유리창과 역내 CCTV 등을 망치와 쇠막대기로 때려 부쉈다. 열차 안에 있던 승객들은 소리를 지르고 어린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에 홍콩지하철공사(MTR)는 전날부터 고속열차를 제외하고 홍콩과 중국 광저우, 베이징, 상하이 등 본토를 잇는 열차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중국 본토 출신들에 대한 최근 사건들에 대해 홍콩에 사는 한 중국인은 ‘100년 넘게 영국의 지배를 받은 결과 홍콩인들은 자신들을 중국인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홍콩 중문대학의 여론조사 결과 40% 이상의 홍콩인은 자신들이 중국인이라는 의식을 ‘낮게’ 또는 ‘매우 낮게’ 갖고 있었다.
중국 본토 출신의 홍콩에 사는 이들은 이제 이들의 모국어 대신 영어를 쓰기도 한다. 중국 허베이성 출신의 캐럴(가명) 씨는 “영국에서 살다가 아이가 중국적인 환경에서 자라길 원해 2016년 홍콩으로 이주했다”며 “그러나 나는 이제 아이에게 사람들 앞에서는 오직 영어로만 얘기하라고 주의를 준다”고 말했다.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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