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권이 추진하는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이 검찰 특수수사 범위와 수사준칙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면서 검찰의 수사 중립성을 침해할 여지가 커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권이 검찰을 활용하거나 길들일 필요에 따라 두 조항을 좌지우지하면서 검찰을 조종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또한 조국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에 대한 감찰 강화도 외압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가 있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검찰청법 개정안에서는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 등 중요범죄’로 규정했다. 즉 법안에서 범죄유형을 명시하기는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으로 위임한 것이다. 이 법안은 지난해 11월 법무부의 의견을 반영해 백 의원이 발의한 안이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하는 방식은 정권에 대한 검찰의 종속을 더욱 심화할 여지를 준다는 지적이다. 정권이 필요에 따라서 수사 범위를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이것은 검찰에 당근과 채찍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검찰 측은 범죄유형이나 죄명으로 수사 범위를 정하는 방식은 실무적으로 적용이 불가능하다며 반대해왔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법안은 검찰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구체적인 수사 범위 설정을 대통령령에 위임해버린 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 실무에서 세부적인 관계를 규정하는 ‘수사준칙’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정권의 영향력이 미칠 길을 열어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서는 ‘수사를 위하여 준수하여야 하는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했다. 비록 현재 수사준칙은 행정 각 부간 권한의 획정에 대한 사항임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지만 검찰은 수사준칙 제정 주체는 수사와 관련된 법률상 책임을 맡고 있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결국 기존 방향대로 선회하면서 향후 정권이 검경 상호협력 관계의 무게중심을 원하는 방향대로 틀 수 있는 여지가 남은 것이다.
또 조 장관이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감찰권을 강화하는 수순에 들어가면서 검찰에 대한 직접적인 외압도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장관이 이날 발표한 ‘검찰개혁 추진계획’에는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1차 감찰 범위 확대를 위한 규정을 이달 중 개정하고 현재 있는 2차 감찰권은 당장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이는 전날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발표한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감찰권 실질화 마련’ 권고의 취지를 수용한 것이다. 지금까지 법무부는 검찰의 자체 감찰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보완적·보충적 감찰을 수행해왔다. 따라서 앞으로 검찰의 자체 감찰을 완전히 폐지하고 법무부가 감찰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감찰권이 검찰에서 법무부로 완전히 이양되면 정권의 뜻을 거스르는 검사들에 대한 ‘찍어내기’가 언제든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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