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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소재·부품과 산업생태계 변화

임채운 서강대 교수·경영학

정부, 소재·부품 지원한다지만

개발 성공해도 판매 보장 안돼

일본 수출규제 대응 차원 아닌

中企 키우는 경제환경 조성을





일본이 수출규제를 시작한 후 핵심 소재·부품을 국산화하기 위해 수많은 대책이 수립됐다. 정부는 내년 예산에 2조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지원 사업을 편성했다.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대한 금융·예산·세제 지원, 공장 신증설 인허가 행정절차 간소화와 기간 단축, 구매 조건부 신제품 개발 활성화, 전문기업 공동출자 및 인수합병 법인세 세액 공제 등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시행 100일을 맞는 11일에는 대통령 직속 ‘소재·부품·장비경쟁력위원회’를 구성해 지속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민관 합동 컨트롤타워도 가동한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국가안보’ 개념까지 도입해 지원을 확대하고 각종 특례를 부여하는 내용의 특별법도 국회에 발의됐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들이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100개의 전략적 핵심 품목을 5년 내 국산화해 공급 안정을 이룬다는 목표를 달성할지 의문이다. 정부는 소재 및 부품의 만성적 대일 역조를 개선하기 위해 2001년 ‘소재·부품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다. 지금까지 네 차례 기본계획을 통해 연구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약 5조4,000억원의 정책지원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소재·부품 산업의 국내 기반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위협당할 만큼 미약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소재·부품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정책지원이나 개별 기업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소재·부품의 사업구조가 특수해 우리 산업생태계와 기업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소재·부품은 개발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판매가 보장되지 않는다. 판로를 확보한다 해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소품종 대량생산에 익숙한 우리 기업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도 소재·부품 사업에 집중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소재·부품 중소기업은 매출의 90% 이상을 내수에서 얻으며 그 대부분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2~3차 협력사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조사 결과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의 73.7%가 국내 중소·중견기업을 주요 거래처로 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대기업의 가치사슬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대기업 간의 과도한 경쟁심 탓에 중소기업이 한 대기업의 울타리에 구속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전속거래관계는 납품단가 인하와 불공정거래의 온상이며 이로써 협력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해 최고 품질의 소재와 부품을 만들려는 장인정신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 대기업 간의 소재·부품 호환성이 배제돼 국내 소재·부품 시장이 커지지 못한다. 대기업들은 기술보호 차원에서 전속거래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일본 등 해외기업에서 핵심 소재·부품을 구매해온 것이다.

소재·부품 분야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거래구조와 산업생태계가 중소기업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개별적인 차원에서 상생·협력해 소재·부품을 협업 개발하는 것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기업들도 서로 협력해 소재·부품 시장을 키우고 경쟁력 있는 전문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이 마음 놓고 혁신에 투자하며 사업에 전념할 수 있는 경제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선진국의 히든챔피언 또는 명문 장수기업은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전문기업이다. 소재·부품 분야의 육성을 단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적극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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