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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990년 깡통계좌 대정리

투자자 반발속 일괄 반대매매

깡통계좌 정리 소식을 담은 1990년10월10일자 본지 기사.




깡통계좌 정리 소식을 담은 1990년10월10일자 본지 기사.


1990년 10월10일 새벽4시. 25개 증권사의 전산실이 바삐 돌아갔다. 아침 동시호가에 증권시장안정기금이 받아줄 반대매매 물량을 입력하기 위해서다. 여의도 증권거래소와 증권업협회 주변을 경찰이 경비하는 가운데 작업은 6시쯤 끝났다. 일부 투자자는 시위를 제지하는 전경들에게 인분을 뿌렸다. 한 여성 투자자는 인분이 낭자한 도로를 뒹굴며 피해 보상을 외쳤다. 주가가 조금 떨어져도 거리에서 주가 부양을 요구하는 데모를 벌이던 1990년, 증권계좌를 임의로 강제 처분한다는 소식은 투자자들의 극렬한 반발을 불렀다.

증권사들이 투자자들의 주식을 마음대로 처분하게 된 것은 깡통계좌가 증시 침체의 구조적 요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깡통계좌란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아도 증권사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없는 담보부족계좌를 말한다. 증권사는 담보부족계좌 발생 즉시 반대매매를 해야 하지만 주가 하락 속도가 워낙 빨라 내용은 점점 나빠졌다. 보유주식 평가액이 빌린 돈의 130%를 밑돌면 담보부족계좌, 100%도 안 되면 깡통계좌로 분류했는데 갈수록 깡통계좌가 늘어났다. 주가가 조금 오르면 깡통계좌 처리 물량이 쏟아지자 재무부는 증권사 사장단의 자율결의 형식으로 일괄 반대매매 날짜를 10일로 잡았다.



투자자들의 항의 속에 이뤄진 반대매매 처리 물량은 951억원. 증권감독원이 파악한 깡통계좌 규모 2,400억원에 크게 못 미쳤다. 증권사들이 여러 가지 구실을 들어 단골과 큰손의 깡통계좌를 구제하는 통에 예상보다 성과가 작았지만 ‘10·10 강제 반대매매’는 주식시장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주식 투자는 여유자금으로 자기 책임 하에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투자자들도 할 말이 많았다. 1989년 한국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해가며 주식을 사라고 부추긴 12·12부양책에 순응한 결과 깡통을 찼다며 목숨을 끊는 투자자도 나타났다.

깡통계좌 대정리는 효과가 있었을까. 그런 것 같았다. 종합주가지수 500선이 무너졌던 시장이 깡통계좌 정리 2주 만에 800선을 회복했으니까. 하지만 주가는 바로 하락세로 돌아서 1992년 여름 456.59까지 한없이 밀렸다. 결국 ‘악성 담보부족계좌 정리’는 일부 투자자들의 계좌를 선별적으로 우선 폐쇄한 꼴이 됐다. 증권사들은 주가가 빠지는 동안 나머지 깡통계좌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망가진 것은 투자자뿐 아니다. 증시 침체 속에 12·12부양책의 최선두에 섰던 투자신탁회사들도 우량금융기관에서 부실사로 전락했다. 부양책은 당장 달콤해도 미래를 망치기 십상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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