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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디스플레이 투자 멈추면 中이 점령...마이크로 LED 개발 나서야"

<유재수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장>

6년만에 日 제치고 세계 LCD 1위 달성한 원동력은 투자

밤새우며 프로젝트 완성...창의적 산업엔 주52시간 안맞아

경쟁국과 기술 격차 벌리려면 형광체 등 기초분야 챙기고

기업 R&D 기반 공유해 불필요한 낭비 막는 윈윈자세 필요





유재수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장은 “중국에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와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성형주기자


요즘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 상황은 좋지 않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 1·4분기에 5,6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2·4분기 역시 애플로부터 7,000억원가량의 지체보상금을 받지 않았다면 1,000억원대의 영업적자를 냈을 것이다. LG디스플레이도 지난 1·4분기 1,300억원, 2·4분기 3,700억원 등 상반기에만 5,000억원대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글로벌 디스플레이산업을 주도하며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양대 업체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해 어느덧 한국을 제치고 글로벌 1위 국가로 올라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유재수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장(중앙대 화학신소재공학부 교수)이 제시한 답은 투자였다. 그는 “LCD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과거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1위를 달성했을 때와 지금 중국의 추격을 받아 2위로 주저앉은 원인을 찾아보면 똑같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선두주자를 만들어낸 원동력은 투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순간이라도 기술개발과 투자를 멈추면 중국에 따라잡힐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당장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에 이어 우리나라를 먹여 살려온 디스플레이산업이 맞닥뜨린 위험과 이를 딛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유 학회장의 생각을 들어봤다.

유재수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장은 “중국에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와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성형주기자


-중국이 LCD 시장을 얼마나 잠식했나.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글로벌 LCD 매출 비중이 45%가량 됐다. 나머지는 대만·일본이 차지했고 중국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2013년 중국이 처음으로 10%대에 진입하더니 계속 비중을 늘려 지난해 기준 30.6%로 우리나라(29.3%)를 제치고 글로벌 1위에 올라섰다.

-2008년 중국의 LCD산업 매출 비중은 0.1%에 불과했다. 10년 만에 글로벌 1위로 올라서는 게 가능한가.

△우리나라는 과거 세계 최고인 일본을 따라잡는 데 6년이 걸렸다. 그때와 비교하면 중국은 오히려 속도가 늦다고 봐야 한다.

-중국이 LCD 매출 1위를 차지한 이유는 뭔가.

△중국은 투자를 많이 한다. 한국이나 일본은 투입 대비 효과를 생각하며 투자한다. 중국은 그런 고려 없이 일단 투자부터 한다. 중국은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계속해서 부동산을 개발한다. 도로 등 인프라를 깔고 공장을 지으면 그곳에 사람이 들어와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국내 수요가 받쳐주는 구조로 경제가 돌아간다. 한국이나 일본이 TV를 만들 때 100원이 들면 110원에 팔아야 한다면 중국은 그러한 고려 없이 TV를 만들기만 하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준다. 관 주도로 끝없이 투자하므로 당해낼 수가 없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서 일본을 따라잡았나.

△우리는 정부 지원하에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이었다. 1990년대 들면서 한국은 이른바 3저 호황으로 인한 자본축적이 상당히 이뤄져 있었다. 정부는 당시의 자본축적이 3저에 기인한 것이지 우리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힘으로 차세대 먹거리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21세기를 선도할 기술개발 사업인 G7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때 선정된 7개 분야 가운데 고선명 TV가 있었다.

-당시 시장 상황은 어땠나.

△G7 프로젝트로 디스플레이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게 1996년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삼성SDI 등이 브라운관이라고 하는 음극선관(CRT)을 만들면서 디스플레이 분야가 커질 것을 알고 있었다. LCD 시장은 샤프· NEC·도시바 등 10여개의 일본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LCD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점찍고 개발에 나서 불과 6년 만인 2002년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1위에 올랐다.

-LCD산업에서 세계 최고인 일본을 따라잡은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디스플레이산업의 특징은 목표가 확실하다는 점이다. 디스플레이의 화질은 고해상도(HD)에서 초고해상도(UHD)를 거쳐 요즘의 4K나 8K로 올라가고 있다. 더 선명한 화질을 만들어낸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는 것이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잘 맞은 측면이 있다. 우리는 목표지향적 융합 사고를 잘하는 국민이다. 쉽게 말해 목표가 정해지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여기에 끝까지 물고 늘어져 성과를 낼 때까지 지치지 않는 뚝심이 더해져 단기에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다. 반도체도 그렇지만 디스플레이처럼 우리나라 사람에게 딱 맞는 산업도 없는 것 같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밤늦도록 열심히 일하는 데 소질이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는 요즘에도 장점이 되겠는가.



△장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때는 엔지니어들이 말 그대로 한두 달은 집에 가지 않고 회사에서 밤을 새웠다.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가져다 놓고 숙식을 해결하면서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일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세상에 없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일한다. 미국도 보면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일하는 시간이 우리보다 훨씬 더 길다. 연구개발(R&D) 분야에서 하루 8시간 근무하고 퇴근하고 다음날 다시 출근하는 식으로 해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주 52시간제는 당연히 해야 된다. 개인적으로 찬성하지만 최소한 R&D 분야에는 일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LCD산업은 중국에 잠식당했지만 더 뛰어난 기술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산업은 우리가 앞서 있다. 전망이 어떤가.

△OLED는 우리가 확실한 기술우위를 점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90% 이상을 우리가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가 중국이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올해부터 OLED 시장을 본격적으로 잠식하고 키워가는 것을 보면 LCD 시장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중국 역시 LCD 분야에 과잉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점차 LCD 대신 OLED 쪽으로 투자 방향을 돌리고 있다. 기술우위가 확실하다지만 불과 몇 년 안에 따라잡힐 수 있다.

-중국의 기술력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것은 우리 기술을 베끼고 훔쳐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가 어떤 제품을 새로 선보이면 바로 다음날 중국이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얘기는 디스플레이에서도 유효하다. 중국은 디스플레이 전문인력을 대부분 한국에 의존한다. 요즘 스마트폰이나 TV 시장은 성장을 멈췄다. 당연히 디스플레이 시장도 성장을 멈췄고 국내 업계에는 인력 구조조정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업체에서 퇴사하는 인력은 대부분 중국으로 간다. 웬만한 중국 디스플레이 회사에 가보면 한국 인력이 100명 이상 있을 정도다.

-중국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디스플레이도 글로벌 1위 자리를 공고히 하려면 품질은 높이고 가격은 낮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LCD는 이미 중국에 넘어갔으니 포기하고 OLED에 집중하자는 얘기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 LCD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차별화 작업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예를 들어 빛을 내는 광원인 백라이트유닛(BLU)을 뺀 LCD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기술을 고도화하면 LCD에서도 얼마든지 중국을 따돌릴 수 있다. OLED도 마찬가지다.

-OLED 다음에 나올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뭐가 있나.

△예를 들어 마이크로 LED가 있다. 컬러 필터 없이 스스로 빛을 내는 초소형 발광물질이다. 이 LED 조각을 붙여 패널을 만들기 때문에 크기나 해상도에 제약이 없다.

-아직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투자하는 업체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다른 나라가 LCD에 머물러 있을 때 OLED를 세상에 내놓으며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했다. 그때도 OLED가 LCD에 이은 대표 기술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로 LED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전략적으로 투자해 새로운 시장을 주도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마이크로 LED는 칩 규모를 작게 할수록 단가가 낮아지는 특징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목표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잘 맞는 기술이 될 수 있다.

-중장기 관점에서 지금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업계에 조언한다면.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색깔을 내는 형광체가 있어야 한다. 전체 디스플레이 가격에서 형광체 분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불과하지만 중요도는 매우 높다. 애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보면 다른 제품에 비해 색상이 더 좋게 나오는데 이는 형광체 차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분야를 파고드는 전문가가 드물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에서 이런 분야에 일해서는 임원이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내 디스플레이산업이 앞으로 글로벌 1위를 유지하고 다른 나라와의 기술격차를 더 벌리기 위해서는 이런 기초적인 분야에 눈을 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G7 프로젝트를 할 때처럼 R&D 분야의 인프라를 공동으로 구축해 함께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당시에는 기업 간에 경쟁도 했지만 함께 쓸 수 있는 R&D 기반은 공유해 불필요한 중복투자를 막았다. 삼성과 LG는 모두 글로벌 1등 회사인 만큼 열린 마음으로 윈윈 하려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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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정보처리용 반도체 레이저의 제조에 관한 연구를 했으며 1994년 이후 중앙대 화학신소재공학부에 재직 중이다. 1998~2001년 한국디스플레이연구조합의 자문 교수로 한미 공동사업인 ‘한미 평판디스플레이 로드맵’ 작성에 관여했다.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장으로 국내 유일의 디스플레이 전시회인 IMID(International Meeting on Information Display)를 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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