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여명] 1984와 阿Q 그리고 문재인 정부

'현재를 지배하는' 오만에 만취

조국사태로 또 하나의 38선

"국론분열 아니다" 정신승리 빠져

1%대 성장률 옐로카드 쏟아지는데

"경제 나아지고 있다" 사실 왜곡

귀에 달콤한 요설 경계해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문구는 섬뜩하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오늘’ 권력을 갖고 있어야 ‘어제’의 과오를 정당화할 수 있고 ‘미래’의 일을 합리화할 수 있다는 뒤틀린 인식을 경계하는 말이다.

소설 속에 미래부(Ministry of Truth)가 있다.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 신문 기사는 없애버리고 사실은 교묘하게 조작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왜곡 부서’의 반어적 표현이다. 나만 옳다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온 나라가 조국 사태로 혼란스럽다. 조 장관과 가족들의 고구마 줄기 비리의혹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혀를 끌끌 내찬다. 보수진영은 광화문을 향하고 진보진영은 서초동에 모인다. 태극기와 촛불을 흔들며 서로를 향해 불구대천 원수인 냥 삿대질을 해댄다. 이념과 진영에 따라 또 다른 38선이 쭉 그어졌다. 통합은 없고 분열과 갈등만 난무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문 대통령은 “정치적 사안에 국민 의견이 나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초동과 광화문이 싸우는 현 상태를 방관하겠다는 것인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으니 과거와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이 묻어 있다.

고꾸라지는 경제를 보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인지부조화 증세를 보이고 있다. 정밀진찰을 받아야 할 병(病)이다. 우리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10개월째 줄어들고 있고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댄다. 무디스 등 해외 기관들은 올해 우리 경제가 1%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며 옐로카드를 꺼내 들고 있는데 귓등으로 흘려듣는다. 청와대 참모와 장관들은 삼척동자도 아는 눅진한 경제 현실을 왜곡하며 요설(妖說)을 토해낸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의 눈물과 직장을 못 구하는 청년들의 울분, 소상공인들의 한숨을 외면한다. 알량한 말장난으로 짓이겨진 그들의 속을 후벼 판다.



루쉰의 ‘아큐정전’에 나오는 아큐(阿Q)는 현실을 왜곡해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못된 버릇을 갖고 있다. ‘정신 승리법’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자신의 어떠한 행동도 옳다고 우긴다. ‘네까짓 놈들보다는 내가 훨씬 낫지’ 라는 우월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북미협상이 결렬됐다. 북한은 자기들이 원하는 방안을 미국 측이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며 책임을 돌렸다. 완전한 비핵화의 실행 의지가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진전이 있다’며 애먼 소리를 한다. 2일에는 급기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보란 듯이 쏘아 올리며 도발했지만 우리 정부는 먼 산 보듯 한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6개 유럽 국가들이 유엔 안보리 회의를 소집해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서글픈 촌극이 벌어졌다. 북한 도발을 억지로 포장하는 고약한 습관이 아큐와 닮았다.

‘노조는 가깝게, 기업은 멀리’라는 정신승리법도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찾은 데 이어 10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을 방문해 기업인들을 격려했다. 기업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서도 보완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조국 사태에서 국민 시선을 돌리려는 쇼잉(showing) 행보가 아니기를 바란다.

이날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2.5%로 취임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어떤 조사에서는 32%대까지 주저앉았다. 1984와 아큐의 어두운 그림자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문 대통령은 아픈 현실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감언(甘言)을 속삭이는 대신(大臣)들을 경계해야 한다. 방향 수정을 하면 패배하는 것이라며 눈을 가리는 참모들을 조심해야 한다. 신산한 국민들의 삶을 제대로 봐야 할 때다. 국민들은 1984와 아큐를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아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