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어떻게 정의할까. 학창시절에 배운 바에 따르면, 공자는 사람을 관계적 동물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 동물이라고 했다. 현실에서는 교과서에서 배운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본다.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며 매사를 감정대로 처리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은 그냥 넘어가도 될 일도 쉽게 넘어가지 않고 꼬투리를 잡는다. 또 함께 일하면서 이견을 조정하기보다 무조건 자기식으로 하려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도 많다. 그 결과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면 기뻐하고 좌초하면 불만을 드러낸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이성과 관계에도 영향을 받지만 늘 자신이 해오면서 길들여진 성향과 습관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의 거취를 두고 서울 시내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제 단순한 찬반이 아닌 진영 대결이 돼 어떻게 하면 세를 불리느냐에 온통 관심을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내외 현안을 꼼꼼히 챙기거나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사람은 한번 생각이 굳어지면 웬만해서는 바꾸기 쉽지 않다. 처음에는 이럴까 저럴까 생각이 말랑말랑하다가도 점점 한쪽으로 생각이 진행되면 돌덩어리처럼 굳어져 웬만한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사람은 변화하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선택한 일을 진행하다가도 의심을 해볼 수밖에 없다. 선택이 완전할 리 없기 때문에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만 처음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서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용’에서는 인간이 생각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류와 실수를 줄이는 문제를 깊이 고민한다. 이를 다섯 단계로 나눈다. 처음에는 널리 배우는 박학(博學), 두 번째는 자세히 물어보는 심문(審問), 세 번째는 신중하게 생각하는 신사(愼思), 네 번째는 분명하게 따지는 명변(明辨), 다섯 번째로 독실하게 행동하는 독행(篤行)이다. 최근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연일 거리로 나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독행의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독행을 하려면 앞의 네 단계의 절차를 거쳤는지 충분히 숙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며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얻을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사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으면 독행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일 수 있다. 다음으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내가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고 상대가 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서로가 궁금하고 불확실한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확인과정을 거쳐야만 내가 옳다고 믿는 주장에 대한 의혹이 줄어들 수 있다.
박학과 심문을 거치고서 내가 어떤 결론을 내렸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내가 하는 행동이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따라서 내가 내린 판단과 행동이 일치하는 길 또한 차분하게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행동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진영 대결이 첨예해지니 나날이 새로운 뉴스가 나온다. 여러 갈래의 뉴스가 나오면 처음에 내렸던 결론을 계속 견지해야 할지 아니면 바꿔야 할지 헷갈릴 수 있다. 이때 여러 갈래의 주장과 생각을 갈래별로 나눠 하나씩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머리카락이 뒤엉키면 빗질하기 쉽지 않듯 여러 갈래의 주장이 뒤섞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실하지 않다. 이때는 진영이 아니라 오로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참에 기준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박학과 심문 그리고 신사와 명변의 과정을 진실하게 거치면 독행은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뚜벅뚜벅 걸어간 삶의 이정표가 된다. 이제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따지고서 독실하게 움직이는지 자문자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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