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 권위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한 일본의 유명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44)가 한일 갈등 상황과 관련해 일본인들에게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소송 판결문부터 읽으라”고 일침을 가했다.
히라노 작가는 11일 게재된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혐한(嫌韓)을 부채질하는 일본 내 언론 보도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했다”며 “한국 문제에 대해 미디어가 무책임하게 반감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옹의 인터뷰를 읽었다는 그는 “우선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들(피해자들)의 경우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설은 한국인, 일본인, 남자, 여자 같은 카테고리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는다”며 “징용공이라는 카테고리가 아닌 한명의 개인으로 주목을 한다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1999년 소설 ‘일식’으로 日 아쿠타가와 상을 탄 인기 작가다. 한국에서는 ‘일식’을 비롯해 ‘마티네의 끝에서’, ‘결괴’ 등 대표작 20여 편이 한글판으로도 출판돼 국내 팬층도 두텁다.
히라노 작가는 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의 판결문도 읽지 않은 (방송의) 출연자에게는 코멘트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우선은 모두 판결문을 읽어봐야 한다. 판결문을 읽으면 쇼크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삶에 대해 “이들은 기술을 습득할 것을 기대하고 (일제 등의) 모집에 응했다가 위험도가 높은 노동 환경에 놓여 임금도 받지 못했다”며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면 맞기도 했다. 비참하다”고 비판했다.
히라노 작가는 지난해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 3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 ‘어떤 남자’를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학창시절 만난 자이니치를 생각하며 그들이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지낼지 생각하면서 자이니치에 대해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일이 서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혹은 일본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뺀 채 사람의 인생을 보고 공감하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사히신문은 한일 갈등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양국 간 관계의 심화를 모색하는 인터뷰 시리즈 ‘이웃 사람’을 게재했다. 히라노 작가의 인터뷰는 인터뷰 시리즈의 첫 순서로 신문 은 인터뷰와 함께 한일 갈등 상황의 쟁점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다마다 다이(玉田大) 고베(神戶)대 대학원 교수(국제법 전공)는 특집 기사에서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징용 판결 문제가 논의되더라도 일본이 불리하게 될 수 있다”며 “ICJ는 1990년대 이후 인권을 중시하고 있어 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ICJ 재판관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가 간 조약이 국내법에 우선한다는 점에서 ‘3권분립에 따라 정부가 사법에 개입할 수 없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에도 무리가 있다”며 “양측 모두 주장에 약점이 있는 만큼 타협점을 찾을 교섭의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