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에게는 친구가 없고 산만 있다.” ‘중동의 집시’,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로 불리는 쿠르드족의 비참한 신세를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아리안계 인종으로 3,000만~4,000만 명의 단일 민족이 고유 문화·언어·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쿠르드족은 국가 없이 중동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다. 터키의 군사공격으로 쿠르드족의 비운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쿠르드족은 약 4000년 전부터 쿠르디스탄에 거주했다. 중세 때 아라비아의 통치를 받은 이후 이민족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 간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 등 인접 4개국으로 분할됐다.
1920년 열강제국은 쿠르드족의 자치를 약속했다가 곧 파기했다. 이에 쿠르드족은 1927년 터키 동부의 아라라트산 일대에 아라라트 공화국이란 국가를 세웠지만 3년 만에 터키군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다. 1946년에는 이란에 살던 쿠르드족이 구소련의 지원을 받아 사회주의 국가인 마하바드 공화국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서방의 지원을 받은 이란군의 공격으로 결국 멸망했다.
이번 터키의 공격도 사실상 쿠르드족의 독립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쿠르드족의 비운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쿠르드족의 절반 정도인 1,500만명은 현재 터키 동남부에 거주하고 있다.
터키 인구의 19% 정도에 달하는 적지 않은 수다. 이 때문에 터키에게 40여년 전부터 쿠르드족 분리 독립을 주장해온 쿠르드노동자당(PKK)은 불편한 존재였다. 시리아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과 PKK가 손 잡게 될 경우 국가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터키는 PKK를 테러 단체로 지목해 탄압을 이어왔다. 실제 2016년에는 친 쿠르드 성향의 매체들이 강제로 문을 닫았고 1만1,000여명의 교사가 PKK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해고되거나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시리아 내 쿠르드족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수도 다마스쿠스 방어를 위해 시리아 정부가 북동부를 비우자 이 지역을 차지한 뒤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를 앞세워 사실상 자치를 누려왔다.
2014년 이슬람국가(IS)가 발호하자 YPG는 자치 지역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항전했다. IS와의 싸움에서 신뢰할만한 파트너를 찾던 미국은 시리아 쿠르드와 손을 잡았고 무기를 공급하며 훈련도 시켰다.
IS와의 전쟁에 선봉에 선 시리아 민주군(SDF)은 이 YPG가 주축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중동 국가들의 병사와 영국·프랑스의 특수 부대가 배속하고 있다. SDF는 IS격퇴를 위해 미군에 적극 협력하면서 우방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SDF가 없었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IS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터키 입장에서는 YPG의 세력 확대가 걱정이었지만, 미군 등이 있는 이 곳을 공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다 미국이 IS와의 전쟁 승리를 선언하자 터키군은 미국에 YPG 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레제프 에도르안 터키 대통령과 전화 통화 후 미군을 철수하자 YPG를 PKK의 지부라고 주장하며 공격을 단행했다. 터키는 32km가량인 완충지대에서 쿠르드족을 쫓아내고 100만∼200만명의 시리아 난민을 재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터키의 공격으로 포로로 잡혀 있는 IS 조직원 1만1,000명 혼란을 틈타 재무장하게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정인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IS 격퇴를 위해 함께 싸운 쿠르드족의 피해를 그냥 두고 보는 것에 대해 배신행위라며 압박에 나서자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쿠르드족의 독립을 우려하는 터키의 입장을 감안할 때 중재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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