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출 규제와 청약 자격 강화 등 주택 시장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지만, 현금부자들은 무풍지대에 있다. 특히 자금력이 풍부한 2030세대들은 고가 아파트 분양과 무순위 청약에 적극 나서며 자산을 불리고 있다. 2030은 스스로 재산을 형성하기에는 젊은 나이라, 이들이 조달한 자금의 상당 부분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규제가 되레 부동산을 통한 부의 대물림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초고가 분양단지 당첨자 10명 중 4명은 30대 = 2019년 7월 기준으로 서울의 3.3㎡ 당 평균 분양가는 2,678만원이다. 하지만 강남 3구에 위치했거나 고급·대형 아파트의 경우 3.3㎡당 4,000만원을 웃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같은 초고가 단지는 통상 분양가가 9억원을 훌쩍 넘기 때문에 중도금 대출도 불가능해 일반 실수요자가 접근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서울 초고가 분양 단지의 당첨자 10명 중 4명은 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가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에게 제출한 ‘2018년 9월~2019년 7월 서울 아파트 고가 분양 10순위 현황’에 따르면 고가 분양가 10개 단지의 당첨자 1,778명 중 30대가 725명(40.8%)으로 가장 많았으며, 20대 또한 67명(3.8%)으로 적지 않았다. 고가 분양가 단지는 3.3㎡ 당 4,926만원에 달한 서초 래미안 리더스원과 4,903만원인 서초 방배그랑자이, 4,902만원인 서초 서초그랑자이 등이다.
서울 고분양가 단지 중, 최연소자는 분양가 약 15억원에 달하는 광진구 e편한세상 그랜드파크 전용 115형에 당첨된 22세였으며, 수도권의 경우 13억원에 이르는 판교 힐스테이트 엘포레 128형에 당첨된 21세도 있었다. 청약 점수가 낮은 2030이 이처럼 청약 당첨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 단지가 평당 5,00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인데다 대형 평형이라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이 제한적인 탓이다.
◇‘줍줍’ 절반 이상은 2030=청약 자격이 까다로워져 무자격 당첨자가 늘고 강력해진 대출 규제에 막혀 자금 조달을 하지 못한 당첨자도 생기면서 이른바 ‘줍줍’이라고 부르는 무순위 청약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 고가 아파트 청약과 마찬가지로 무순위 청약 결과 또한 자금력을 갖춘 2030이 가장 많은 혜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김상훈 의원실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2018년~2019년 7월 무순위 청약 당첨자 현황’에 따르면, 최근 2년간 무순위 청약 및 당첨이 발생한 주요 아파트 단지 20곳의 무순위 당첨자 2,142명 중 30대가 916명(42.8%), 20대가 207명(9.7%)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10대 중에도 2명의 당첨자가 있었다.
한 예로 무순위 청약 단지 중 3.3㎡당 4,891만원으로 분양가가 가장 높았던 서울 방배 그랑자이의 경우 줍줍 당첨자 84명 중 30대가 30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3.3㎡당 4,751만원의 서울 디에이치 포레센트의 또한 무순위 당첨자 20명 중 12명이 30대 였다. 3.3㎡당 4,150만원의 시온캐슬 용산 당첨자 44명 중 30대는 17명, 20대는 13명이었다.
◇“양도세 어차피 비싼데”…증여 급증=부의 대물림의 또 다른 방식인 증여 또한 부동산 규제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분양한 단지에서 수백 건의 증여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김상훈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서울 아파트 중 증여가 가장 많았던 단지는 서울 강동구 고덕 아르테온으로, 3년내 증여 건수가 671건에 달했다. 다음으로 같은 강동구의 고덕 그라시움이 344건, 중랑구의 사가정 센트럴 아이파크의 341건 순이었다. 강남권의 송파 헬리오 시티가 314건으로 그 뒤를 이었고, 성북구 꿈의숲 아이파크(289건), 영등포구 보라매SK뷰(238건), 영등포구 e편한세상 보라매2차(237건), 양천구 래미안 목동아델리체(209건)가 증여거래 200건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최고 매매가는 138건의 증여가 이루어진 서초 그랑자이로, 25억 8,000만원(119.41㎡)에 거래됐다. 증여거래가 가장 많았던 강동 고덕 아르테온은 최근 12억원(84.97㎡)에 분양권이 거래됐다.
김상훈 의원은 “고가 아파트에 당첨된 2030은 신혼·청년 특별공급이 아닌, 대다수가 일반 공급에서 당첨됐다”며 “또한, 다수의 줍줍 단지가 분양가 9억 이상으로 중도금 대출이 제한돼 막대한 현금 없이는 지원 조차 어려운데도 당첨자의 절반 이상이 2030이라는 것은, 현금부자 중에서도 증여부자가 많이 뛰어 들었다는 것을 방증한다”며 “현 정부가 여러 가지 분양 규제를 펼쳐왔지만, 실제로는 소수 계층에게만 수혜를 몰아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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