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0일. 국회의원으로서 첫 임기를 시작하기까지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다린 시간이다.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28번을 받았지만 당선권과 거리가 멀었다. 20대 총선 때는 민주당 16번째 비례대표였지만 기회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국회의 시계는 돌아갔지만 정 의원은 낙담도 방심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민주당 비례대표 15번이었던 이수혁 전 의원이 주미대사로 발령되며 정 의원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185일. 기다림 끝에 그에게 주어진 의원 임기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자신만만하게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오는 14일부터 국정감사에 본격 투입되는 정 의원은 9월 중순부터 이미 보좌진을 꾸리며 준비에 나섰다. “대학생 때부터 정치를 꿈으로 해온 준비된 정치인”이라는 그의 포부를 들어봤다.
정 의원은 12일 서울경제와의 전화에서 “20~30대만 대변하는 것이 아닌 미래 세대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만 36세로 민주당 내 최연소 국회의원(국회 최연소 의원은 만 33세의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이다. 그는 “저를 뽑아주신 이유가 제가 청년을 대표하라고 뽑아주신 것도 있지만, 청년이라고 한정하기보다는 미래 세대라는 방향을 잡고 싶다”고 했다. 정 의원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청년창업·신재생에너지·저출생문제 정책 역시 미래세대라는 키워드로 묶인다.
정 의원은 ‘청년 창업‘과 ’신재생에너지‘ 문제를 미래세대에게 필요한 첫 번째 과제로 꼽았다. 경제가 상승 가도에 있을 때는 성장 그 자체에 집중하지만, 저성장 시대에는 환경 문제와 분배의 문제를 등한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청년 창업을 처음에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끝까지 지켜나갔을 때 성공할 수 있는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유학시절 경험했던 미국과 비교해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의 창업 환경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다니는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마크 주커버그도 페이스북이 몇 번의 실패를 거쳐 수정하는 작업을 통해 대기업이 됐다”며 “한국에선 소상공인과 창업가들이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로 힘든 상황에 처한다. 이 사다리에서 떨어지면 그 사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꼬집었다. 정 의원이 산자위라는 상임위원회를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전 국민의 88%에 해당하는 소상공입과 창업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산자위에서는 신재생에너지 개발 문제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결과적으로 환경이 보전되고 지켜져야 인간이 생존할 수 있다”며 “수력·화력·풍력 발전 등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꾸준히 공부해왔다”고 덧붙였다.
‘미혼모보호법’은 정 의원이 통과시키고자 하는 1호 법안이다. 그는 오랜 기간 미혼모들을 도운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며 이들의 어려움을 몸소 느꼈다. 정 의원은 “아버지는 가족들을 반지하방에 숙식하게 하고 따로 집을 마련해 미혼모들을 살게 하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진했다”고 회상했다. 정 의원은 또래 친구들이 산부인과에서 아이 낳는 것을 지켜보며 정치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미혼모들이 원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보호시설에도 못 가는 친구들이 많다”며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최근 청년 세대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조국 장관 입시 비리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정 의원은 “입시 제도가 더 경쟁적으로 발전한 게 학생부종합전형이 도입된 이명박·박근헤 정부 때”라며 “학종이 우리 사회에 맞지 않게 이식된 부분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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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딸의 입시 과정이 공개되며 ‘기득권 특혜 논란’이 일었다. 조 장관 딸이 고등학교 때 2주 간 인턴활동을 하며 논문 1저자에 등재되거나 MEET(의학교육입문검사) 시험을 치지 않고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통해서 합격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주장해 온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정 의원은 “새로운 세대의 경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화합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갈등을 유도하거나 조장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존경하는 정치인으로는 ‘민주당의 모든 대통령’을 꼽았다. 그는 “김대중이 길을 만들었고 노무현이 길을 닦았고, 문재인이 그 길을 운전하고 가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 신념을 소개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이 쓴 ‘진보의 미래’라는 책 내용을 소개했다. 정 의원은 “보수는 고속버스와 같이 예약한 사람이 오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는 반면, 진보는 마을버스와 같이 골목골목을 다니며 사람들이 뛰어오면 기다렸다가 태우고 간다”며 “내가 추구하는 버스는 진보의 버스다.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그런 세상이 맞지 않을까”라며 자신의 철학을 말했다.
정 의원은 오는 14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후 산자위 국정감사장에 들어서며 의정활동을 시작한다. 임기는 21대 국회의원 명단이 확정되는 내년 4월 15일까지다. 정 의원에게 총선 출마 계획에 대해 묻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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