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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광장정치와 숫자의 함정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외교학

수의 논리로 민주주의 받아 들이면

다수 독재·소수 배제 문제 야기

정파 대립·숫자 대결로 흘러가는

소통부재 광장정치 바람직 안해

이재묵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다. 국회의원들은 청문회가 끝났음에도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야공여방(野攻與防)의 청문회를 계속하는 한편, 휴일이면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각각 ‘조국 퇴진’과 ‘조국 수호’를 외치는 시민들이 각 진영의 세를 과시하듯 대규모로 결집하며 광장 경쟁을 펴나가고 있다. 대규모 집회가 개최된 휴일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여의도 정치인들은 어느 쪽 집회에 더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였는지를 두고 날선 공방을 주고받기 일쑤다.

분명 한국에서 광장민주주의는 대의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 마치 꽉 막힌 정치과정의 흐름을 녹이는 적절한 용매처럼 적기에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광장에 모인 시민의 규모를 비교하며 어느 쪽에 더 많이 모였는가 하는 식의 접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10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생업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쪼개 황금 같은 휴일에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여 그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기 때문에 대표자들은 그 준엄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광장민주주의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현실적 운용에서 중요하게 기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무의식중에 ‘숫자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다수결이 제도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할지라도, 더 많은 사람이 속한 편이 더 옳다는 식의 접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항상 경계해야 하는 함정이다. 민주주의를 수의 논리로 극단화해서 받아들이면 결국 다수의 독재와 소수의 배제로 귀결될 수 있기에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숫자로 중요한 정치적 의사결정을 한다면 대의제가 설 땅은 점차 줄어들 것이며, 결국 매번 어느 선택지에 더 많은 사람이 줄 서 있는가 가늠하는 국민투표에 대한 요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현재 유권자 규모가 4,000만명 이상으로, 전체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이라는 점에서 광장에 모인 100만, 200만명은 채 5%가 되지 않는다. 수적 경쟁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가져가면 결국은 전체 인구 대비 어느 편이 더 다수인지 국민투표를 통해 실제로 세어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투표는 그 자체로 많은 경제적 비용을 가져올 뿐 아니라 전체 국민 분열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까지 초래한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운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이라는 말처럼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진영 대결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견해를 달리하는 모든 시민이 매번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고 숙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우리를 대표하는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정치인들이 국회에 모여 각각이 대표하는 진영 간 견해차를 줄여 합의를 도출해내는 ‘정치’를 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숙 여부는 이런 자연스러운 진영 대립과 갈등을 사회가 얼마나 성숙하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대립과 교착만 존재할 뿐 정치가 실종된 여의도 국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치는 뒷전으로 한 채 광장으로만 향하는 정치인들은 시민의 대표로서 그들이 위임받은 주된 역할과 임무가 무엇인가에 대한 뼈저린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광장정치가 우리 현대정치사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큰 역할을 담당해왔던 것은 분명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까이는 2016년 촛불 혁명이 그러했고 4·19혁명과 6월항쟁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변곡점을 제공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파 대립과 숫자 대결로 흘러가는 ‘소통 부재’ 광장정치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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