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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정치]‘지일파’ 총리의 멀고 험한 일본행

22일 일왕즉위식 참석차 도쿄 방문

韓서도, 日서도 역할론 주목 받지만

역대급 갈등상황, 운신 폭 넓지 않아

극적 반전 없더라도 추가 악화 막고

文-아베회담 등 대화복원 계기 기대

일본 아사히신문 2014년 1월 21일자에 실렸던 이낙연 당시 민주당 의원의 전남도지사 출마 기사.




2014년 1월 21일 일본 아사히신문 조간 국제면에 이낙연 국무총리(당시 민주당 의원)의 전남도지사 선거 출마 관련 기사가 실렸습니다. 아사히신문은 당시 서울 특파원에게 이 의원의 출마 선언 기자회견 현장 취재를 지시한 후 관련 기사를 다음 날 지면에 실었습니다. 그 만큼 이낙연이라는 한국 정치인의 행보에 대해 일본에서 관심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 총리는 당시 보도를 접한 후 개인 소셜네트워크계정(SNS)에 “기사가 나간 이후 일본 국회의원과 재일 동포 지도자 등 지인들이 국제전화를 걸어 격려해줬다”고 소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해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양자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일본을 잘 아는’ 대한민국 국무총리

신문 제목에 포함 된 단어 하나가 눈에 띕니다. ‘지일파(知日派)’.

말 그대로 ‘일본을 잘 아는 인물군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이 총리를 소개할 때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늘 수식어로 따라다니는 바로 그 단어입니다.

이 총리가 신문기자 시절 도쿄 특파원을 역임한데다 의원 시절 한일의원연맹 수석 부회장·간사장 등을 맡았던 까닭입니다. 전남도지사 시절에도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지로 일본을 택했습니다.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이라고 주변에서 평가합니다. 이 총리의 언론사 후배들은 특파원 시절 ‘독하게 일본어를 익히더라’는 후일담을 전합니다.

일본 정계·재계 인사들과 공식·비공식 만남도 많이 가집니다. 물론 그러다가 의중이 왜곡돼 전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지난 8월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 자민당 의원이 최근 일본 언론에 이 총리가 본인에게 지소미아 종료 재검토를 제안했다고 일본 기자들에게 전했고, 이를 한국 총리실이 정정했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9월12일 서울 총리공관에서 이상근 청해부대장 등 9명의 국민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어렵기만 한 위치

하지만 ‘잘 안다고’ 평가되기에 더 어렵고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게 ‘지일파’라는 위치입니다.

한 예로 2010년 12월 롯데호텔에서 아키히토 당시 일왕 생일 축하연이 열렸습니다. 주한일본대사관이 주최했고, 정·재계, 학계에서 500명 가까이 찾아와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정치인들도 행사장에 얼굴을 비쳤습니다. 당시 인터넷언론 ‘부스앤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현장에 있던 기자에게 포착됐습니다. 이 의원은 “어떻게 오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일의원연맹 회장인데 한일 친선 교류를 위해서 당연히 와야지”라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은 “그래도 국민감정이 있지 않냐”라는 질문에 “이 사람들(일본인)이 사과하고 그랬으면 우리도 노력하고 해야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연맹 간사장인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취재진이 그에게 불참 이유를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짧았습니다. “내가 판단해서 불참했다. 이제까지 참석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지일파’로 불리며 산다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외교 관계와 국민감정을 늘 더 많이 고려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고민해도 잘해야 본전인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한일 사이에 낀 살얼음 위를 걷는 것과 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나루히토 일왕 부부가 지난 5월 도쿄 왕궁에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EPA연합뉴스


최악 한일 갈등 속 일왕 즉위식 가는 부담

이런 기대와 평가를 받는 이 총리가 오는 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한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합니다. 즉위식 당일인 22일부터 24일까지 2박 3일입니다. 이 기간 즉위식과 궁정 연회,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주최 연회 등에 참석합니다. 이에 더해 일본 정계의 유력 인사와 회동, 현지 동포들과의 만남 등에도 나설 예정입니다.



한일 관계의 어려움이 가득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전격 방일, 장관급 특사 등 즉위식 참석과 관련된 여러 시나리오가 나왔지만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결국 ‘지일파 총리 참석’이라는 카드가 뽑혔습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이 총리와 아베 총리의 양자 회동입니다. 이미 일본 언론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지만 두 사람이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별도로 만날 가능성은 큽니다. 이들의 만남이 최종 성사되면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 공격이 본격화한 이후 처음으로 양국의 정상급이 1대1로 만나는 외교 일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총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구면입니다. 지난 2005년 아베 총리가 관방장관 지명자 시절 방한했을 때 회동한 적이 있고 지난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도 공식 양자 회담을 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도쿄에서 열린 임시국회에 참석해 개막연설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UPI연합뉴스


강제징용·지소미아·경제갈등 3대 난제 ‘캄캄’

하지만 큰 관심 속에 이뤄지는 일본행이지만 극적인 관계 반전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수출 규제 등 3대 난제 해법을 놓고 양측은 이성과 감정의 영역을 오가며 갈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양보하기 어려운 국내 정치적 고려도 있기 때문에 양국이 3대 사안을 고려해서 어떻게 패키지로 딜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이 총리와 아베 총리가 3대 사안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고 정상회담을 준비하면 다행”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양국이 수차례 고위급 회담에서 큰 견해 차이를 확인했고 40여개국에서 축하사절이 오는 만큼 이 총리와 아베 총리 간 면담은 10분 남짓에 불과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1박 2일 양자회담을 세 차례 해도 꼬인 실타래를 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관측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 총리의 즉위식 참석은 역대급 갈등 속에서 이웃국으로서 외교적 예의를 충분히 갖춘 격입니다. 즉위식에 미국에서는 일레인 차오 교통부 장관이, 중국에서는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참석합니다.

양기웅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원장은 “이 총리와 아베 총리 간 만남은 회담은 아니지만 적어도 양국이 수뇌레벨에서 어떤 태도 변화가 상호 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며 “이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했습니다.

이 총리가 문제 해결을 원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아베 총리도 큰 틀에서 공감대를 표하면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예비회담 성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케이크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멀고 험한 일본행…日도 성의 보여야

좋았던 적보다 나빴던 적이 더 많은 사이, 바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2019년 지금은 1965년 한일 수교 이래 최악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이에 더해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가뜩이나 국제사회의 불확실성 변수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미중 패권 전쟁, 북핵 위협 등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과제가 많은 이웃국입니다. 평화와 협력 관계의 복원과 지향은 한일 모두에게 절실한 과제입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이라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 대한해협이 그 어느 때보다 거칠고 멀고 험한 바다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그 바다를 건너 갑니다. 일본도 이제는 그 발걸음의 무게를 생각하고, 성의 있는 대응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정영현·박우인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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