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동네는 어디일까. 만약 지금 이 질문을 던진다면 많은 이들이 ‘서초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법원과 검찰청사가 모여 있는 서초동이 요즘 유난히 언론과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내가 대검찰청에서 일하던 2년 전 가을에도 서초동은 뜨거웠다.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 진행된 적폐청산 수사와 검찰개혁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던 때였다. 나는 그때 대검에 설치된 검찰개혁위원회를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어쩌면 가장 뜨거운 가슴과 끓어오르는 머리로 아프게 일했던 시기다.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일을 했고, 그만큼 많이 아팠다. 위원회의 논의는 너무도 뜨겁고 치열했다. 위원들의 지적은 쓰리도록 정곡을 찔렀다. 그동안 지녀온 내 가치관에 금이 갔다. 우리가 지켜온 정책의 방향성과 보편성에 회의가 들었다. ‘검찰이 불편하게 되더라도 국민이 편하게 되는 개혁’을 위해서는 한번은 넘어야 할 일이었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에는 실제 생활에서 과연 누가 그 제도를 이용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그 제도가 가장 힘없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충분히 검토해야 함을 배웠다. 다른 곳에서는 얻기 어려운 귀한 소득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입장의 차이도 확인했다.
내가 속해 있던 부서는 정확히 1년 만에 해산했다. 위원회도 1년 임기를 끝으로 더 연장하지 않았다. 위원회와 함께했던 흔적은 내 사무실 한 쪽에 꽂혀 있는 ‘국민의 검찰을 향한 검찰개혁위원회 1년의 기록’이 전부다. 위원들의 수많은 고민과 연구와 토론의 결과물이기에 그날 이후 늘 나와 함께하고 있다.
위원회는 1년 동안 총 38번의 회의를 했다. 어떤 위원회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수사권 조정과 과거사 반성, 검찰 인사제도 등 많은 중요하고 민감한 내용이 논의됐고 결과물도 적지 않았다.
검찰권 남용을 방지하고 수사의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권고한 ‘수사심의위원회’는 벌써 검찰에서 여러 차례 중요 안건을 심의했다. 검찰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을 투명하게 기록화하도록 한 것은 초기 일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당히 정착됐다.
1·2심에서 무죄가 난 형사사건은 가급적 상고를 자제해 당사자들이 조기에 형사 절차에서 배제될 수 있도록 권고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고 있다. 과거와 달리 재심 사유가 있는 경우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고 많은 경우 형사보상까지 이어졌다.
재정신청 대상 확대, 변호인 조력권 강화, 형사기록 공개 확대, 장애인과 여성·아동 등 범죄 피해자 특성에 따른 인권보호 방안 수립, 검사장급 검사에 대한 차관급 예우 폐지도 위원회의 성과물이었다.
검찰개혁위가 해산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 가을에도 여전히 검찰개혁이 화두다. 아쉽지만 그렇다고 검찰개혁위의 시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국민을 위한 검찰로 가는 개혁의 길은 그것이 무엇이든 위원회의 결과물에서 출발할 것이기에 그렇다.
지금은 서초동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조용하고 평온한 그저 사람 사는 동네다. 조만간 서초동도 그런 곳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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