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해외칼럼] 트럼프 탄핵 조사를 지지하는 이유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개인 이득위해 우크라이나 압력

의회 탄핵조사에 협조 거부까지

권력분립 깬 '선출직 독재' 우려





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다양한 시도에 오랫동안 반대입장을 취했다. 선거결과를 뒤집는 탄핵은 극단적인 경우에만 가능한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대통령 탄핵과정은 이미 분열된 국가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게다가 상원을 지배하는 공화당이 재적 의원 3분의2의 찬성을 얻어 대통령을 기소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트럼프에게 면죄부를 안겨주면서 재선을 도와주는 정치적 효과를 주기 십상이다.

그러나 지난 수주간에 발생한 여러 사건들은 탄핵조사 지지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를 포함해 새로 출범한 우크라이나 정부에 압력을 가하려는 트럼프의 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개인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미국의 대외정책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야말로 권력남용의 전형이다. 심지어 트럼프의 지지자들조차 그의 행동이 탄핵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잘못이라고 시인한다.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탄핵조사에 대한 트럼프의 협조 거부다. 그와 유사한 입장에 처했던 이전 대통령들은 특정한 소환요구나 자료공개에 국한해 선별적인 협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반면 트럼프는 국정운영 최고책임자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묻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의회의 고유 권한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의 가장 든든한 우군인 월스트리트저널(WSJ) 논설위원들마저 의회 탄핵조사는 위헌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허튼소리로 일축했다. WSJ는 최근 사설을 통해 ‘하원의 탄핵소추권은 구속을 거의 받지 않는 의회의 헌법적 권한 중 하나’라고 적시했다.

법에 의한 지배는 수세기에 걸쳐 서구에서 구축된 개념이지만 기만적 꼼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취약성을 지닌다. 여기서 꼼수란 최고권력층에 법을 준수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늘 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만인은 법에 의한 지배를 존중해야 한다고 대중을 윽박지르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통치 시스템의 핵심은 권력분립이다. 미국을 건국한 국부들은 정부에 지나친 권력이 주어질 경우 자유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행정부와 입법부·사법부의 권한을 분리함으로써 상호견제를 통해 정부가 전반적인 힘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했다.

미합중국 헌법의 주 설계자인 제임스 매디슨은 서로 다른 기구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각부 책임자에게 필요한 헌법적 수단과 개인적 동기를 제공’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이와 관련, 그는 ‘연방주의자 51호 논설’에서 ‘야망은 야망으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를 존중해야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의회는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자체 군 병력이나 경찰력이 없다.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의회와 사법부는 그들이 제정한 법과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그들의 권위를 인정해야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는 얘기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녹취록 공개를 거부하는 ‘행정명령’은 위헌이라는 연방 대법원의 만장일치 판정이 나오자 자신이 대통령직을 상실하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지체 없이 사법부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역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재논의를 막기 위해 그가 내린 5주간의 의회 정회 결정이 불법이라는 최고법원의 판결이 떨어지자마자 “개인적으로는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법원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그러나 트럼프는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 아직도 그는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한 문서와 정보·증언을 요구하는 의회의 지극히 헌법적인 요구를 따르지 않고 있다. 그는 또 의회가 배정한 예산을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했고 법을 어긴 측근들의 사면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군은 남쪽 국경지대에 모인 중남미 이민자들을 향해 발포하라는 취지의 불법적인 지시를 내렸고 지금도 행정부 수장에 대한 의회의 감독권 행사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만일 트럼프의 주장이 먹히고, 그의 행동이 용인된다면 그는 선출직 독재자가 될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헌법의 토대 위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한 입장이다.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조사가 공평하게 이뤄지고 또 그렇게 보이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 두 차례의 탄핵조사를 통해 확립된 선례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

탄핵이란 궁극적으로 정치적 절차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가 결정적이다. 우크라이나 폭로가 나온 후 탄핵을 지지하는 여론이 확대됐지만 아직도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팽배한 상태다. 이번 조사는 대중 교육행위로 진행돼야 한다. 대중에게 이번 사례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적 시스템에 관해 알려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 한 번의 충격으로 단숨에 독재로 변질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인기 있는 선출직 관리들이 헌법적 통제와 법의 견제를 약화하거나 아예 없애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유는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훼손된다. 바이마르공화국은 초반에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였으나 합법적 절차를 거쳐 불과 몇 년 만에 독재체제로 전락했다.

미국 예일대 정치사학자인 티머시 스나이더는 유럽의 역사에서 끌어낸 교훈을 이렇게 정리했다.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이 새겨야 할 결론은 분명하다. 공화국을 한데 묶어주는 룰을 결코 깨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언젠가 질서를 필요로 하는 날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