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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847년 '제인 에어' 출간

가난과 차별, 의지로 극복

제인 에어 /위키피디아




1847년 10월16일 영국 런던의 엘더·스미스 출판사가 새 책 ‘제인 에어(Jane Eyre)’를 펴냈다. 세 권짜리 소설 초판은 두 달 만에 매진되고 미국에서도 판권을 사갔다. 원고를 퇴짜 놨던 출판사들은 땅을 쳤다. 원고를 검토했던 출판사들이 활자화를 꺼렸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익명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커터 벨이라는 필명을 앞세운 작가의 이름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31세 여성인 샬럿이 커터라는 남자 이름을 썼지만 문단에서는 작가의 정체를 두고 추측과 논란이 일었다.

책 제목 바로 밑에 자전적 소설이라고 밝혔는데도 어떤 유명 남성 평론가는 내용을 극찬하면서 ‘저자는 남성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글에 남성적 박력이 넘친다’는 이유에서다. 작품이 크게 히트하고 저자가 여성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이 남성 평론가는 ‘대단히 형편없는 작품’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익명으로 냈다. ‘대영제국의 절정기를 향해 내달리는 선진국 영국’에서조차 여성은 이런 대접을 받았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인간이 더욱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던 계몽주의 시대에 압박받은 여성 천재는 샬럿뿐만이 아니다.

샬럿의 두 여동생도 글을 쓰며 ‘브론테 자매’가 아니라 ‘벨 형제’라는 가명에 숨었다. ‘리어왕’ ‘모비딕’과 더불어 영미문학 3대 비극으로 손꼽히는 ‘폭풍의 언덕’을 지은 에밀리와 ‘애그니스 그레이’를 쓴 막내 앤도 ‘벨’이라는 가면을 썼다. 실제 생활에서도 샬럿은 지독한 차별 속에서 자랐다. 완고하고 가난한 아일랜드 성공회 사제였던 부친의 셋째로 태어났으나 곧 장녀가 됐다. 두 언니가 영양실조와 병으로 일찍 죽은 탓이다. 어머니도 다섯 살에 잃었다.



가난 속에서도 부친은 외아들만 편애하며 모든 것을 쏟았으나 주정꾼으로 전락하고 방치됐던 세 자매는 책과 산책에 빠져 모두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샬럿의 인생도 소설과 닮았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기숙학교에 보내져 교사로 교육받으며 연상의 교장과 연애감정을 느끼고 실망하는 설정도 같다. 사랑과 절망, 십수 년 세월이 지난 뒤 재회와 결혼까지 비슷하다. 소설과 판이하게 다른 대목은 죽음. 결혼 직후 임신과 폐렴으로 39세 나이에 죽었다. 그래도 요절한 여동생들보다는 오래 살았다.

소설 ‘제인 에어’에는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주인공 제인이 ‘억울하다’고 느끼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그럴 만하다. 미안한 마음을 접고 빈다. 편견과 차별 탓에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브론테 자매가 다시는 없기를.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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