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씨 일가의 상징과도 같은 백두산에 올랐다.
백두산은 김 씨 일가가 북한 내에서 권력의 정통성을 선전하기 위해 신성시 해 온 ‘혁명의 성산(聖山)’으로 불리는 곳으로 김 위원장은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기 전 이곳을 찾았다.
◇정치적 결단 앞서 백두산 찾는 金=지난 2013년 김 위원장은 집권 후 당시 북한 정권의 실세로 알려진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을 앞두고 백두산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2016년에도 5차 핵실험 직후 백두산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과를 과시했다. 2017년에도 미국과 험악한 관계에 놓이며 한반도에 긴장 수위가 높아지자 백두산행을 택했다. 해를 넘긴 2018년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극적인 반전을 이룬 바 있다.
◇트럼프 침묵에 김정은, 중대결심 섰나=과거의 사례들을 돌아봤을 때 김 위원장이 백두산에 올랐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대한 결심이 섰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비핵화 협상의 최종시한인 연말이 임박한 시점에서 미국과의 대화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김 위원장이 백두산을 찾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난 스톡홀름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렬된 뒤 북한이 북미관계의 레드라인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까지 거론하며 극단적인 벼랑 끝 전술을 이어가고 있는 점도 우려된다. 이미 레드라인의 경계선에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라는 초강수를 쓴 점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이 쓸 수 있는 카드는 핵실험과 ICBM 발사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이 핵 및 ICBM 시험을 재개한다면 이는 비핵화 협상 판 자체를 깨는 것으로 김 위원장으로서는 말 그대로 극약 처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핵실험 재개 등 북한이 비핵화 판을 깰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더 강화되는 것은 물론 전략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지는 등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분석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백두산에 올라 무력도발이 아닌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외치보다 내부결속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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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장기전 대비 내부결속 의도?=이날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백두산 방문이 “우리 혁명사에서 진폭이 큰 의의를 가지는 사변”이라며 “우리 조국을 최강의 힘을 보유한 강국의 전열에로 완강하게 이끄시며 역사의 흐름을 정의와 진리의 한길로 주도해가시는 김정은 동지의 전설적인 기상이 빛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또 백두산 입구에 자리 잡은 삼지연군의 인민병원과 치과전문병원 건설사업, 삼지연들쭉음료공장 등을 찾아 현재 마무리 중인 2단계 공사를 현지지도했다.
김 위원장은 삼지연에서 “지금 나라의 형편은 적대세력들의 집요한 제재와 압살 책동으로 의연 어렵고 우리 앞에는 난관도 시련도 많다”면서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 앞에 강요해온 고통은 이제 더는 고통이 아니라 그것이 그대로 우리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적들이 우리를 압박의 쇠사슬로 숨조이기 하려 들면 들수록 자력갱생의 위대한 정신을 기치로 들고 적들이 배가 아파 나게, 골이 아파 나게 보란 듯이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앞길을 헤치고 계속 잘 살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그 누구의 도움을 바라서도, 그 어떤 유혹에 귀를 기울여서도 안 된다”면서 “오직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길을 불변한 발전의 침로로 정하고 지금처럼 계속 자력갱생의 기치를 더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중앙통신) 보도의 순서를 보면 백두산행보다 삼지연 현지지도가 우위에 있다”며 “새로운길 결단보다 경제집중노선의 재다짐을 통해 내년도 당창건75주년을 맞아 사회주의 경제강국을 선언하려는 의도에 무게중심이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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