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장치는 착용하고 낚시하셔야 합니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로 거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11일 연안구조정을 타고 해상순찰에 나선 동해해양경찰서 강릉파출소 송정출장소의 김영수 경위가낚시객들이 줄지어 서 있는 테트라포드(TTP)를 향해 계도방송을 했다. 테트라포드는 파도로 인해 방파제가 침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중심에서 사방으로 네 개의 발이 나와 있는 형태지만 정면에서 보면 세 개의 발이 뻗어나온 것처럼 보여 ‘삼발이’라고도 불린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바닷가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낚시 성수기’ 중 하루였던 이날 강원도 강릉항 방파제에는 80여명에 달하는 낚시객이 모였다. 강릉항은 낚시 명소로 10월이면 고등어와 가자미가 많이 잡힌다. 이현희 송정출장소 경위는 “평일에는 하루 평균 70명 이상의 낚시객이,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까지 100여명이 온다”고 말했다.
물고기를 많이 잡겠다는 욕심에 테트라포드 위에 올라섰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해경의 설명이다. 김 경위는 “바닷물에 맞닿아 있는 부분은 이끼로 인해 미끄러워 잘못 밟으면 추락할 위험이 크다”면서 “밑으로 떨어져 머리가 콘크리트에 부딪힐 경우 즉사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동민 송정출장소 경장도 “테트라포드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다가 물고기가 지나가면 그쪽으로 달려가 낚싯줄을 내리는 일명 ‘훌치기’ 낚시는 특히 문제가 많다”며 “강릉항은 연안 수심도 10m가 넘어 아래를 굽어보다 물에 빠지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강릉항에서는 40대 남성이 테트라포드 사이에 추락해 어깨가 골절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테트라포드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는 2016년 49건, 2017년 49건, 지난해 37건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45건에 달했다. 또 테트라포드가 주로 설치된 방파제나 해안가에 위치한 갯바위에서 발생한 사고는 2016년 185건에서 지난해 219건으로 약 18.4% 증가했다. 낚시객이 몰리는 매년 8월에서 11월까지는 방파제 사망사고도 잦다. 지난해 4달간 방파제에서 발생한 사망사고(3건)는 연간 방파제 사망사고(5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인명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테트라포드 낚시를 규제할 방도는 없다. 테트라포드가 통상적으로 위치한 바다 방면의 외항은 관련법의 규제를 받지 않아서다. 지난 5월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파제에 낚시객 등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항만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때문에 해경이 ‘방파제 추락사고 예방 요령’ 등 안전수칙을 배포하고 있지만 테트라포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수칙에는 ‘구명조끼를 착용한다’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안전화를 착용한다’ 등 조항이 명시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낚시객은 드물다. 이날 강릉항 테트라포드에서도 안전장구를 착용한 낚시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구명조끼를 입고 강릉항을 찾은 우종천(65)씨는 “많은 낚시객들이 구명조끼조차 입지 않고 테트라포드에 올랐다가 변을 당한다”며 “같은 낚시객으로서 좋은 고기를 건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자기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안전수칙 홍보에도 사고가 줄지 않자 해경은 지난해부터 신속한 구조가 가능하도록 잠수인력과 장비를 배치한 ‘구조거점파출소’를 지정해왔다. 지난해 12곳이 지정됐고, 올해에는 13곳이 추가 지정됐다. 해경 관계자는 “구조거점파출소에는 해군특수전전단(UDT) 등 전문 구조인력이 투입돼 해상구조를 돕고 있다”면서도 “구조보다 낚시객 스스로가 테트라포드에 올라가지 않거나 안전장구를 착용해 사고 위험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강릉=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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