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경제전망을 발표했다. 이번 IMF 경제전망에서 나타난 특징은 ‘동시적(synchronized)’ 경기둔화다. 싱크로나이즈드 수영 선수들이 나란히 움직이듯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함께 내려갔다는 뜻이다. 그 결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3.0%로 전망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컸던 2009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세계 경제둔화의 큰 원인은 미중 무역전쟁이다. 미중 양국은 지난주 워싱턴 협상에서 중국이 50조원 규모의 미국 농산물을 구매하고 미국이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30%로 올리려던 계획을 유예하는 등 합의를 이뤘지만, 미니 딜로 잠정 휴전에 그쳤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첨예한 쟁점인 중국의 강제 기술이전, 국영기업 보조금, 제조업 육성정책에 대해서는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상태로 확전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불확실성, 중동의 지정학적인 리스크 등도 잔존해 세계 경제를 둘러싼 먹구름은 가시지 않고 있다.
IMF는 올해 한국이 2.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 역시 2009년 이래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수출 환경이 나빠진 것이다. IMF는 올해 세계 무역 증가율을 불과 1.1%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확대재정 정책을 펼 계획이다. 이는 IMF가 독일과 한국에 권고한 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꼭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경기대응책으로서의 재정 지출은 부족한 민간수요를 보완·촉진하는 ‘마중물’ 역할을 위한 것이지, 민간을 대체하기 위한 게 아니다. 이참에 공공성을 늘리려는 조치, 예를 들어 공무원 정원 확대는 오히려 민간의 생산활동을 제약하며 지속적인 재정 지출을 초래하므로 신중해야 한다. IMF가 제시한 것처럼 인프라나 연구개발(R&D) 부문에 대한 투자에 우선순위를 두되, 효율성을 살펴본 후 추진해야 한다.
지금 겪고 있는 세계 경기둔화가 단순한 경기 사이클의 하강 현상이라면 다행일 터다. 정부는 내년 1·4분기든 2·4분기든 세계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면 우리 수출이 증가하고 경제도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세계 경제도 한국 경제도 지금은 경제활력이 계속 저하돼 장기적인 성장능력 자체가 상실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큰 차이가 있다.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폭넓고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육성한다는 계획은 여러 번 발표됐지만, 시험 주행지역 마련이나 무인 자동차 운전에 관한 법령 정비 같은 가시적인 조치는 없다. 현대자동차는 4조원의 자율주행 기술개발 법인을 한국이 아닌 미국에 설립하기로 했다. 정보기술(IT)을 의료에 접목하는 원격의료는 해외에 수출하면서도 오랫동안 국회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정작 국내에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큰 부작용이 우려되는 주 52시간 근로제도도 R&D 콘텐츠 분야 등의 산업별 특성 고려와 같은 필요한 보완조치를 바로 시행해야 한다.
경직적인 노사관계를 해소해 민간 투자가 늘어나도록 해야 하며, 적자를 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회사에서 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되풀이하는 행태를 용인해서도 안 된다.
며칠 전 한 청와대 참모가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하는 사람들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로 무책임한 사람들은 따로 있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면서 ‘곧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난 전 청와대 참모들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신임 IMF 총재가 먹구름 짙은 세계 경제의 위기 대비를 촉구하면서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새겨들어야 한다. “3시간 빠른 게 1분 늦은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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