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오늘날 강소국으로 자리를 잡게 된 데는 초대 총리인 리콴유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일방적으로 축출되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독립을 이뤘을 때만 해도 싱가포르는 모래밭과 작은 바다를 낀 섬들로 이뤄진 보잘것없는 나라였다. 서울시보다 작은 582㎢ 면적에 인구는 200만명도 되지 않았고 자원은 전혀 없었다. 자체 식수원도 없어 말레이시아가 식수 공급을 중단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을 정도다. 이런 나라를 동남아시아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은 세계적인 금융·물류 중심지로 키운 인물이 리콴유다. 리콴유는 1965년 8월 독립할 때부터 1990년 11월까지 25년 동안 총리로 재직하면서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확고한 신념과 냉철한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싱가포르를 경제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탁월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국제정세의 맥을 잘 짚기로도 유명하다. 리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기도 전에 미국과 중국 간 패권전쟁이 21세기 국제무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런 리콴유가 한국에 조언한 것이 있다. 그는 사망하기 2년 전인 2013년 출간한 저서 ‘리콴유의 눈으로 본 세계(One man’s view of the world)’에서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저출산·고령화와 사회적 갈등 두 가지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리콴유가 특히 우려한 것이 사회적 갈등이다. 그는 “한국의 갈등은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하다”며 “이것이 사회 에너지와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다”고 걱정했다.
리콴유의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싸고 발생한 혼란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절반이 넘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 전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온 나라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진 두 세력 사이에는 타협의 공간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광복 직후 신탁통치를 둘러싼 찬반세력 간 대립을 보는 듯했다. 문제는 국론통일의 책임이 있는 대통령과 정치권이 갈등을 되레 부채질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의 시위는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지지세력을 일방적으로 편들기까지 했다. 불통과 내 편 껴안기의 결과가 무엇이었던가. 극심한 혼란뿐이다.
이 같은 현상은 현 정권이 출범할 때부터 일찌감치 예고됐다.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하자마자 적폐청산을 제1 국정과제로 내세워 과거 정부의 잘못 들추기에 나섰다. 2년 내내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검정 역사교과서,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 보수정권 9년 동안의 실정을 심판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했다. 이 과정에서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한 공무원까지 적폐세력으로 몰아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논란을 일으킨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도 절차를 문제 삼아 미루는가 하면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는 원전을 일방적으로 폐쇄하면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검증도 안 된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산업현장의 혼란을 심화시켰다.
리콴유는 “작은 나라는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단시간에 재앙을 초래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금은 동북아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시기다. 미중 패권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는 호시탐탐 한반도를 넘보고 있다. 여기에 일본도 재무장을 통해 한반도에 힘을 투사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벼랑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자칫 미중일러의 틈바구니 속에서 대응을 잘못해 나라를 잃고만 19세기 말의 상황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도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들을 통합하기는커녕 국론분열을 부추긴다면 우리나라가 설 자리는 없다. 문 대통령은 지금이 우리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라는 점을 명심하고 국론통합에 나서야 한다. 만일 혼란을 부추겨 국권이 흔들리는 사태가 온다면 문 대통령은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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