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노동의 미스매치, 학력 과잉의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교육은 여전히 대학 입시와 진학에만 매몰돼 있다. 그 길에서 낙오하면 ‘루저(looser)’로 낙인찍는 사회 인식도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능력중심 사회로의 전환과 ‘고졸 만세(고교만 졸업해도 만족하며 사는 세상)’의 기치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이들의 적성과 소질·능력은 다양한데 모두 대학만을 향해 한 줄로 서는 교육으로는 아이들에게도 국가 미래에도 결코 희망이 될 수 없다. 물론 사교육과 입시경쟁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대한 근원적 해법은 교육과 산업·노동시장의 체질 개선에 있다. 먼저 중학교 이후 고교 단계에서 진학교육과 직업교육을 선택하는 ‘투 트랙 교육체제 개편’이 시급하다. 물론 지금도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가 있다. 하지만 직업계 고교 대부분을 차지하는 특성화고의 대학 진학률이 40%에 육박해서는 직업교육 트랙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특성화고 등이 명실상부한 ‘고졸취업 성공 시대’를 이끌 수 있도록 직업교육 트랙의 정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AI)·디지털·로봇 등 급변하는 노동 환경에 대응한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한편 우수교사의 확충과 학교의 교육·훈련 여건의 선진화 등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현장실습도 학생 안전을 기본으로 우수 기업의 참여를 늘리고 내실화된 교육과 함께 취업으로 이어지도록 규제보다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또 8월 공포된 ‘산업현장 일학습 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이 학교와 기업을 연계해 조기 직업능력의 개발과 고용 안정에 기여하도록 안착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같은 교육의 체질 개선은 산업·노동시장의 혁신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서울 특성화고 절반 이상이 올해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었다. 그 이면에는 2017년 53.6%였던 직업계고 취업률이 올해 34.8%로 곤두박질치고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취업하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가 지난해 기준 월 226만원으로 더 벌어졌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아무리 학교가 직업교육을 잘해도 졸업 이후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로써 학생과 학부모들이 외면한다면 헛일이다. 지금처럼 전체 노동시장의 10%도 안되는 대기업·공기업·공무원 등 좁은 문만 뚫는 대학 진학에 매몰해서는 직업교육이 설 자리가 없다. 가칭 ‘임금차별금지법’ 등 직업계 고교 졸업자의 임금차별 해소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중소기업 육성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면서 고용·노동시장 정책이 뒷받침돼야 교육의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실제 ‘노동혁신’을 주제로 지난달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한 ‘미래컨퍼런스 2019’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공감대를 얻었다. 이날 참석한 500여명의 기업·노동·법률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이 생존하려면 기술 혁신과 숙련인력 양성 등과 함께 영세 중소기업·자영업·비정규직이 90%를 차지하는 노동시장의 개선이 절실하다는 데 공감했다. 특히 교육계가 산업·노동정책 결정에 더 이상 소외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변화하는 노동 환경에 대응해 우리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질의에 강연자는 ‘국·영·수 위주의 교육과 입시제도, 학교 교육, 입사시험이 확 바뀌어야 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고졸 만세’가 신화가 아닌 현실이 될 때 교육 문제도 노동 문제도 풀어낼 수 있다. 그래야 직업교육이 활성화되고 입시경쟁과 학벌주의를 해소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응한 인적역량 강화 및 미스매치 해소도 현실화될 수 있다. 진정한 능력중심 사회로의 전환도 이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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