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들이 과학에 가장 관심을 두는 때 중의 하나는 10월이 아닐까 싶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줄이어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우리나라를 비껴간 노벨상은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 옆 나라 일본은 매해 과학 분야 수상자를 배출하며 노벨상 시즌을 국가적 축제의 계절로 만들어 더욱 그렇다. 노벨상은 여러 분야가 있지만, 그 진수는 아무래도 과학 분야다. 일본은 벌써 25명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이 중 22명이 과학 분야 수상자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선전하고 있는데 한 해가 멀다 하고 계속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발전을 이뤘고 이제 노벨상으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비에서 세계 1~2위를 지켜왔다. 올해만 해도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이 20조원을 넘었고 정책 방향도 기초연구 진흥이다. 그럼에도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우리 과학계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석굴암·한글·역법 등 우리의 창의성은 어디에도 지지 않는다고 믿어왔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노벨상은 전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우수한 연구성과를 거둔 과학자에게 주어진다. 전 세계 과학자들 모두의 꿈이기에 하루아침에 노벨상을 탈 만한 성과를 낼 수 없으며 축적된 기초 위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이 축구에 엄청난 투자를 해도 아직 꿈의 무대인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듯 노벨상의 꿈도 단시간의 집중 투자로는 이루기 어렵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연구 투자를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 중반으로 이제 30년 남짓 지났다. 일본이 2000년대 들어 노벨상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20세기 초반부터 쌓아온 인프라와 1950년대 이후의 지속적 투자에 기인한다.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연구 역량은 지금 당장의 투자 액수로는 가늠할 수 없다. 지금껏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축적돼왔는가가 중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성과평가 시스템이다. 아무리 논문 인용 수가 많아도 이미 남들이 해놓은 일이라면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 2014년 일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인 중 한 명인 아카사카 이사무 교수는 모두가 비웃으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청색 발광다이오드(LED) 개발에 20여년간 매달려 성공했다. 또 다른 수상자인 아마노 히로시 교수는 아카사카 교수의 학생이었는데 그 역시 수천번의 실험을 거듭해 결국 성공을 일궈냈다. 우리나라였으면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에 20년간 매달릴 수 있었을까. 연구비는 고사하고 교수 자리나 지킬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구자의 능력과 연구 성과를 숫자로 가늠한다. 논문 숫자나 피인용 수 등 숫자에 의해 교수 승진이나 연구비 지원이 결정된다. 그래서 논문을 많이 내야 하고 그러려면 유행을 좇는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남이 만들어낸 유행을 따라서는 노벨상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양에 편중되는 경향은 특허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특허 출원은 GDP 대비 세계 1위지만 산업재산권 수지는 계속 적자다.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한 정부가 기초연구 지원에서 선정 및 평가 방식을 일부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기초연구자들이 있는 대학 및 연구소의 성과평가 기준은 바뀐 것이 별로 없다. 연구의 질을 측정하려면 정량적 지표로는 어렵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평가에서는 늘 공정성과 전문성의 두 요소가 충돌하는데 공정성만 추구해 정량적 지표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라도 과감히 정성평가 위주로 평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적어도 기초연구 분야에서는 그렇다.
아직 10~20년은 더 있어야 우리도 노벨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의 정성평가를 신뢰하고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시스템을 갖추면 우리나라의 과학 분야 노벨상은 의외로 빨리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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