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치적 결단의 장소인 백두산을 찾은 후 북한 내부에서 미국의 제제를 견뎌내기 위한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의 핵심전략인 대북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점을 지적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노동신문은 이날 ‘제국주의자들의 제재는 만능의 무기가 아니다’ 제목의 정세론해설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제재에 겁을 먹고 양보하면 망한다”고 밝혔다.
신문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은 저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들에 제재를 들이대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면서 “한걸음의 양보는 열걸음, 백걸음의 양보를 가져오고 종당에는 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그 사례로 이라크와 리비아를 거론하며 “제국주의자들의 위협과 공갈, 제재압박이 두려워 동요하면서 물러서다가는 국권을 유린당하게 되며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것과 같은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은 유엔의 무기 사찰을 수용했음에도 미국의 침공 이후 권력을 뺏기고 사형됐으며,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핵무기를 폐기하고 몇 년 되지 않아 반정부 시위로 권좌에서 물러난 뒤 은신 도중 사살됐다.
신문은 “제국주의자들이 제재를 가하는 것은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나라들의 경제를 혼란시키고 민심을 불안케 하여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저들에게 예속시키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며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은 그 누가 가져다주거나 지켜주지 않는다. 오직 제국주의자들과의 투쟁을 통해서만 지켜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과 러시아 등 미국의 제재에도 자국 정책을 유지하는 국가들을 거론하면서 “현실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는 만능의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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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은 이날 ‘국제관계발전에 엄중한 해를 주는 행위’ 제목의 기사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의 제재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내정간섭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나라들에 대한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그들이 취한 제재는 그 지속성, 악랄성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하며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막대한 저해를 주고 있다”며 “제재는 해당 나라들의 반발과 대응만을 불러일으킬 뿐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거듭된 태도변화 압박에도 미국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비핵화 협상을 둘러싼 북미 간 기 긴장이 고조될 전망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은 ‘우크라이나’의혹 등에 따른 탄핵이라는 국내 정치적 요인도 있지만 북한에 대한 무대응 전략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핵 실험 재개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등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라는 분석이다. 실제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후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북한의 속내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스톡홀름 노딜 이후 계속된 북한의 대미공세도 북한의 고심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북한의 대미 공세가 거세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앞서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미국의소리방송(VOA)과의 인터뷰에서 미-북 비핵화 협상을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북한은 실무 협상 결렬 후 ‘미국이 빈손으로 나왔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며 “이번 협상은 미국 입장에서는 시간 낭비였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도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이번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리고 북한에 건넬 제안을 발전시키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는데 북한은 하루 만에 협상장을 나가버렸다”며 “김 위원장이 또 다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날 것을 제안할 수도 있는데, 실무 협상이 없는 회담은 성공할 수 없음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고 강조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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