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의 일본 방문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 총리에게 경색된 한일관계의 돌파구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일본 총리실은 한일정상회담 개최 등 양국 관계 개선 가능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데 여전히 신중한 모습이다. 갈등의 시발점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해법 등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가 여전한 탓이다. 이 총리 역시 세간의 과도한 기대감에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대신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이 일본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뜻을 일본 국민에게 직접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양국 국민 간 상호 불신이 더 확대되는 것을 막고 ‘상호호혜’를 중시하던 과거를 함께 되돌아보는 기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1일 “22일 일본에서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이 열리고 이 총리가 한국 정부를 대표해서 참석할 예정”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꽉 막힌 한일관계가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재계도 이 총리에 ‘한일관계 개선 역할’ 요청
이 총리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은 정치권뿐 아니라 재계에서도 크다. 재계에서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총리에게 ‘한일관계 개선에 앞장서 달라’는 요청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강제징용 배상, 수출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당면 과제들이 워낙 단단하게 얽혀 있는 탓에 이 총리의 방일 한 번으로 일괄 타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와 1박 2일 양자회담을 세 차례 해도 꼬인 실타래를 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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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우호’ 부각하는 현지 일정들 잡아
이 때문에 이 총리는 이번 방일을 앞두고 아베 총리와의 공식 면담 외에 ‘한일 우호’를 상징하는 개인적 인연을 강조하면서 ‘소프트 스킨십’ 행보를 최대한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우선 22일 즉위식에서 공식적으로 만나게 되는 나루히토 일왕과는 지난해 3월 브라질 물포럼에서 인사를 나눈 사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당시 왕세자였던 나루히토 일왕은 이 총리에게 “양국 간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또 23일 모리 요시로 전 총리와도 만난다. 이 총리와 모리 전 총리는 2000년대 한일 의원 교류 활동을 통해 양국 사이에 ‘대화 파이프라인’을 놓기 위한 노력을 했던 사이다. 24일 면담하는 자민당의 쓰치야 시나코 중의원은 선친에 이어 2대째 지한파 정치인이다. 축령산 편백나무숲이 이들 집안이 기증한 씨앗 덕분에 조성되기도 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강창일 민주당 의원도 이 총리 방일 성과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경계했다. 강 의원은 이날 오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에 (아베 총리와) 깊은 얘기는 못할 것”이라며 “양국 간의 우호 관계 증진 차원에서 얘기를 하고 그다음에 실무자 선에서 큰 그림은 갖고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일정상회담 개회와 관련한 질문에 “정상 차원의 회동이 가능하려면 일본의 전향적 태도와 (회담의) 성과가 담보돼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답했다. .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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