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년 10월22일 저녁 영국 남서부 연안 실리 제도. 프랑스 툴롱 항구 포격전에 나섰던 영국 해군 전단이 나타났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의 일환으로 벌어진 툴롱항 봉쇄작전에서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환하는 영국 함대가 혼동한 게 있었다. 위치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도버 해협의 안전지대를 항해 중이라고 여겼으나 실은 수백㎞ 떨어진 지역의 야간 항해였다. 항로 착오는 비극을 가져왔다. 오후8시께 암초에 부딪친 2급 전열함 ‘어소시에이션호(HMS Association·1,459톤)’가 굉음과 함께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3급 전열함 이글호와 4급 전열함 롬니호, 소형 포함 파이어브랜드호도 잇따라 같은 운명에 빠졌다. 전열함 15척에 중형 포함 4척, 쾌속 범선과 요트 각 1척 등 모두 21척으로 구성된 영국 함대 가운데 4척이 침몰하고 1척이 크게 망가졌다. 침몰한 함정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생존자는 단 13명. 함대 사령관 쇼벨 제독을 포함한 1,647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최강의 함대, 연초에 스코틀랜드와 합병하며 기세를 올렸던 영국의 정예 전함들은 어쩌다 항로를 잃고 최악의 재난을 만났을까.
경도(經度·longitude)를 잘못 파악한 탓이다. 적도를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의 위치를 파악하는 위도(緯度·latitude)는 정확하게 측정했지만 동쪽 또는 서쪽으로 얼마나 항해했는지 계산하는 방법을 몰라 무수한 배가 암초에 걸렸다. 더욱이 실리 제도는 ‘선박의 무덤’으로 악명 높던 해역. 당시 영국 의회는 사고 조사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고 원인이 경도 측정 오류에 있었다는 점을 밝혀낸 의회는 1714년 ‘경도법(Longitude Act)’을 제정, 경도위원회(위원장 아이작 뉴턴)를 구성하고 ‘경도상(Longitude Prize)’을 내걸었다.
경도상의 상금은 2만파운드. 요즘 우리 돈 60억원 이상인 상금에 연구자들이 얼마나 많이 응모했는지 ‘경도인(longitudinarian)’이라는 신조가 생겼다. 수많은 실패 끝에 무명의 시계공 존 해리슨이 30여년에 걸친 집념으로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쿡 선장의 세계 일주와 대영제국으로의 웅비에는 재난사고 극복 의지와 경도 측정을 위한 끈질긴 집념이 녹아 있다. 요즘에도 실리 제도에는 일확천금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단다. 어소시에이션호 부문 인양(1967년)을 계기로 제정된 난파선 보호법(1973년)에도 아랑곳없이.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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