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德仁) 일왕이 22일 각국 정상급 인사를 초청한 자리에서 즉위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린다. 일본 헌법 상 일왕은 정치적 권한이 없지만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인 그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주목된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일본을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로 전환하는 개헌에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전후에 태어난 첫 일왕인 그가 헌법에 관해 어떤 뜻을 표명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다수의 여론은 나루히토 일왕은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되 일본인의 보편적 감정에 비춘 발언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나루히토 일왕의 메시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전후 최장기간 재임 중인 아베 총리와 보여온 이견 때문이다. 나루히토 일왕은 왕세자 시절인 2014년 2월 생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 헌법을 기초로 삼아 쌓아 올려졌고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헌법을 지키는 입장에 서서 필요한 조언을 얻으면서 일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일왕이 헌법에 정해진 국사(國事)에 관한 행위에만 관여하며 국정에 관여할 권능을 지니지 않는다고 헌법에 규정돼 있다는 점을 거론하고서 이같이 말했다.
일왕의 역할 등을 규정한 헌법을 준수하면서 자신이 맡은 바를 다 하겠다는 발언으로 보이나 아베 총리가 개헌을 필생의 과업으로 꼽고 있어 일왕의 당시 발언은 일종의 호헌 메시지로 해석되기도 했다.
또 아베 총리가 이번 임시국회를 개헌 논의의 장으로 삼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라서 일왕이 즉위 행사에서 헌법에 관한 언급을 할 경우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30년 전 즉위 의식을 한 아키히토(明仁) 상왕이 헌법을 준수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점에 비춰보면 이번에도 비슷한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전후 세대로서는 첫 일왕인 그가 세계 평화에 관한 발언을 할지도 주목된다. 나루히토 일왕의 부친 아키히토 상왕은 유년기에 전쟁을 겪었는데 일왕 재위 중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표명한 바 있다. 반면 아베 총리는 미국 등 동맹국과 협력해 지역 및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한다는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걸고 동맹국이 공격당했을 때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일본이 실력을 써서 대응하는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안보 체제를 변경했다. 아베 정권의 적극적 평화주의가 일본을 국제 분쟁이나 타국의 전쟁에 휘말리게 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일왕이 세계 평화 등을 언급하면 여러 가지 해석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한일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은 점을 고려하면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역사 관련 언급은 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역사를 전공한 나루히토 일왕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일본의 역사 인식에 시사점을 남길 발언을 할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나루히토 일왕은 올해 일본 패전일(8월 15일)에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해 다시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2015년 2월에는 “전쟁의 기억이 흐려지려고 하는 오늘날 겸허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비참한 경험이나 일본이 밟아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를 일본 안팎에 알리는 의식은 이날 오후 1시 도쿄 소재 고쿄(皇居) 내 행사 시설인 규덴(宮殿)에서 열린다. 아베 총리 등 일본 정부 관계자, 이낙연 국무총리,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 부주석, 찰스 영국 왕세자 등 183개국 주요 인사 등 약 2,000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아베 총리는 이 총리를 비롯해 약 50개국 대표와 개별 면담을 한다.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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