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턴가 '딸이 최고'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이를 방증하듯 ‘딸바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지 오래다. 자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뉴스에서는 연일 저출산 문제를 보도하고 있지만, 예능 프로에서는 스타들의 딸바보 일상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힘든 시대라고 하지만,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딸 아이는 존재만으로 그 가치는 충분하다.
아빠와 딸, 그 영원한 관계와 변치 않는 사랑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도서가 나왔다. 전문 작가가 쓴 책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도 눈물도 참 많은 보통 사람, 보통 아빠 ‘윤정진’의 이야기다.
신간 ‘아빠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언제나 내겐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너에게(꿈꾸는인생)’는 ‘치과의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초등학생이 된 딸 다슬이의 ‘아빠’ 윤정진의 이야기를 담았다.
TV를 보던 다슬이가 뭔가를 적어서 아내에게 옵니다.
다슬이가 적어 온 건 전화번호.
“엄마, 여기다 전화해 봐.”
“여기가 어딘데?”
“다치거나 아프면 백만 원 준대.”
“응? 어딘데?”
“000생명보험.”
- p.129
입학 당시에 비하면 등굣길을 함께하던 다슬이 친구 엄마들의 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네,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다슬이가 혼자 갈 수 있다는 걸.
그리고 다슬이는 알고 있습니다.
아직 아빠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걸.
- p.220
다슬이의 천진난만함에 웃음이 터지고, 딸을 향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주 작은 아이가 가져다 준 변화는 컸다. 조용하던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고, 꿈이 없던 아빠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으며, 다른 이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자랐다. 오랜 시간 중요하게 여겨 온 삶의 가치도 바뀌었다.
‘아빠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는 우리 모두가 존재만으로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존재임을 다시 깨닫게 해 준다. 그 깨달음이 고단한 삶에 주는 위로가 참 크다.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이 시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