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대학입학 정시 확대 방침을 밝히면서 교육계의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입제도 개편의 중심축이 돼야 할 교육부는 논의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돼 ‘패싱’을 당한 실정이고 중장기 교육정책을 짜야 할 국가교육회의는 책임 회피에 나섰다. 정부의 교육정책 파트너인 일선 교육감들은 대통령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당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관련 입시 의혹으로 정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이 커지자 청와대가 졸속으로 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이 같은 혼란은 예고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교육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다. 전날 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교육 불공정 해소를 위한 대책으로 제시한 정시 비중 상향 등 대입제도 개편에 속도가 붙은 것이다. 문 대통령이 교육만을 주제로 장관들을 불러 회의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의에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른 장관 중에는 누가 참석할지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정시 비중 상향 문제와 관련해 “몇 퍼센트까지 확대할지 비율이 정해진 것은 없다”며 “앞으로 논의가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 교육부가 공론화 과정 등을 거쳐 만든 2022학년도 입시제도 개편안을 또다시 바꾸는데도 구체적인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국가 백년대계를 두고 청와대와 교육부의 엇박자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일산에서 열린 ‘한국-OECD 국제교육 컨퍼런스’와 관련해 기자들을 만난 서유미 교육부 차관보는 교육관계장관회의 개최 소식을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했다. 전날 문 대통령 시정연설을 듣고 난 다음에야 청와대의 정시 확대 입장을 알게 된 교육부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이날도 반복된 것이다. 방향성을 제시하는 청와대와 주무 부처인 교육부의 연결고리 약화는 향후 대입제도 개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교육부와 함께 중장기 교육정책을 만들어야 할 국가교육회의는 정시 확대로 인한 혼란을 책임질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지난해 국가교육회의가 대입 공론화 과정을 진행한 것은 교육부가 우리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라며 “학생부 종합전형과 수능을 두고 일어나는 이해관계 다툼 조정은 교육부에서 다루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가교육회의는 중장기 교육현안을 다룰 뿐 단기적으로 벌어지는 이슈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김 의장은 “지난해 대입 공론화에서 만든 ‘정시 30%’룰과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그동안 적정 정시 비중을 ‘30%’ 정도로 잡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비중 확대’를 주문한 문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선에서 정부와 교육정책의 파트너가 돼야 할 전국의 시도교육감들은 청와대의 정시 확대 입장에 대한 반대 의사를 거듭 피력했다. 이날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비중 상향’ 시정연설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며 “수능 위주의 정시 전형은 학교 교육과정의 파행을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자율형사립고인 상산고의 일반고 전환을 두고 교육부와 갈등을 벌였던 김승환 전라북도교육감 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의장은 “정부의 갈지자 정책이 혼란만 키우고 있다”며 강하게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이날 이틀 연속 성명을 내고 “정시 확대는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하고 현 교육과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교육이 한낱 국면 타개용 제물이 된 데 참담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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