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적 결단의 장소인 백두산을 찾은 바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에는 선대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금강산 관광 사업까지 비판했다. 그동안 김 위원장이 ‘백두혈통’을 강조하며 김 전 위원장을 신성시해온 만큼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남북 협력을 중심으로 한 김정일의 정책과 차별화를 둔 것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장기간의 비핵화 협상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따른 내부 불만 등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단호한 리더십을 보여준 것으로도 보인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2013년 당시 고모부인 장성택을 전격 처형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로 최고지도자로서의 권위를 확보한 바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 위원장이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되어 흠이 남았다고, 땅이 아깝다고,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심각히 비판했다”고 전했다.
정권의 정통성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북한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선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선대인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유훈이나 공적을 이어받은 후광으로 지금까지 북한을 끌어왔지만 이제는 자기의 시대가 왔다는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교류협력을 통한 민족 공조를 강조한 김정일과 달리 민족보다는 국가를 강조하며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해왔다. 김 위원장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관광 사업도 이 같은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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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 시대의 대남전략은 남쪽의 경제적 지원과 협력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이른바 ‘투코리아 전략(two Koreas)’”이라며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민족주의 담론으로, 민족 공조라는 기조로 남북협력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웃 나라와의 냉정한 관계로 할 만한 사업은 챙겨서 하고 내키지 않으면 안 하겠다는 실용적인 대남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금강산 일대의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도 남녘 동포들의 관광은 환영할 것이라고 밝힌 점도 이 같은 실리주의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이 독자적인 금강산 개발을 강조한 만큼 향후 문재인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남북교류협력 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아마 지금 여명 거리도 만들고 미래과학자 거리, 삼지연 등뿐 아니라 최근에 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등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금강산 사업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관광 개방은 현실적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김 위원장의 이날 금강산 일대 남측 시설 철거 발언은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인 미국에 주는 메시지도 강한 만큼 향후 북한의 대미정책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의 금강산 관광 독자개발은 사실상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재를 ‘자력갱생’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문 센터장은 “미국과 대화하는 것에는 제재를 풀어 경제문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는데 금강산 관광 문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우인·김인엽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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