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사진 선임요건을 강화하면서 경영 투명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일부 사외이사들이 경영진과 유착해 거수기 역할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외이사 자격을 일일이 제한하고 개인정보까지 공개하도록 만들면 가뜩이나 제한된 사외이사 인력풀을 좁혀 오히려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라는 근본취지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사나 감사후보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문제다. 마치 공직자 후보 검증처럼 까다롭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데 누가 사외이사를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사외이사의 70%가 관료나 학계 인사에 편중된 마당에 기업인들이 배제된다면 외풍에 휘둘릴 가능성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사외이사는 외국계 투기자본이 툭하면 입맛에 맞는 후보를 강요할 정도로 가장 취약한 고리다. 이래저래 기업들은 경영권 안정이 위협받고 과도한 외부 간섭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기업들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경영 간섭에 이어 노동계나 시민단체의 사외이사 선임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국회에는 다중대표소송제나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경영권을 위협하는 법안이 계류돼 있다. 기업들로서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전념하기는커녕 경영권 방어에 급급한 형편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갖가지 꼼수를 동원해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는 공정경제를 핑계로 더 이상 기업 경영에 개입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간 부문의 지배구조는 정답이 없다. 기업은 실적으로 말하고 판단은 시장과 주주들에게 맡기면 된다. 그래야 경제 활력도 되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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