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는 24일 오전10시40분께 긴장된 미소를 보이며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로 들어섰다. 지난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예고했던 때를 기점으로 한일관계가 급격히 악화 된 가운데 3개월여 만에 정상급이 만나는 기회가 어렵게 마련됐기 때문이다.
당초 한일 양측은 결과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 ‘회담’ 대신 ‘면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기대감을 낮췄다. 하지만 이날 오전 한일 양측은 ‘회담’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는 “면담 대신 회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상대방(일본)이 이번 만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담은 예상보다 12분 지연된 오전11시12분 시작됐다. 회담 시작 전 이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표정은 다소 굳어 있었다. 하지만 양 총리의 회담은 당초 예상했던 ‘10분 남짓’을 훌쩍 넘어 21분 동안 진행됐다.
하지만 강제징용 배상 판결, 수출규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3대 난제 해결을 위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대신 아베 총리는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면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은 그 어떤 관여도 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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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 총리는 귀국길에서 진행한 기내 간담회에서 “(한일 간에) 입장 차이가 이제까지도 몇 차례 있었는데 그것을 대화로 해온 경험이 있고, 이번에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방안이 오간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해 절충점을 찾기 위한 물밑 움직임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 총리를 통해 아베 총리에게 전달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 역시 개별 갈등 사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을 세세하게 담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문 대통령은 가까운 이웃으로 동북아시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는 사실과 양국 현안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한 상호 관심과 노력을 제안했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한일관계의 추가 파국을 막고 싶다는 의지를 아베 총리에게 전달한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이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11월 정상회담 추진을 건의할 수 있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상회담에 관해서는 제가 언급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얼음장 밑에서도 강물은 흐르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제안까지는 아니지만 “한일관계가 개선돼 두 정상이 만나면 좋지 않겠습니까”라며 아베 총리에게 기대감을 전했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이제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진 외교당국 간 비공개 대화가 이제 공식화됐다고 받아들인다”며 “아베 총리가 ‘상황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 ‘당국 간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여러 분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한 말씀은 약간의 변화라고 저는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도쿄·공군1호기=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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