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총리’로 불리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22~24일 일본 방문 당시에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측에 기념 선물로 ‘포천 이동막걸리’를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는 그간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소통’의 도구로써 막걸리를 애용해왔다. 아베 총리에게도 꽉 막힌 한일 간 대화 채널을 넓히자는 뜻에서 막걸리를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포천시 관계자는 25일 “일본 국왕 즉위식에 참석한 이 총리가 한일 양국 관계개선 메시지가 담긴 포천 막걸리를 선물로 전달했다”며 “이 총리가 아베 총리와의 회담을 위해 준비해 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총리님 막걸리 한 잔 하시죠”
이 총리는 자타 공인 ‘막걸리 예찬론자’다. 이 총리는 만나는 사람들은 “총리님, 막걸리 한 잔 하시죠”를 인사 말처럼 건넨다. 이 총리 역시 공관 오·만찬 자리에 거의 행사주로 막걸리를 올린다. 테이블에 올릴 막걸리를 고르는 기준도 있다. 초대 받은 사람 중 좌장의 고향 막걸리를 내놓는다. 좌장의 출신지가 부산이라면 금정산성, 충남 공주라면 밤막걸리가 등장하는 식이다.
이 총리가 예전부터 막걸리를 좋아했던 이유는 우선 주머니 사정에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소주처럼 원샷을 하기가 힘들어 오랫동안 천천히 이야기를 하면서 마실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시절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위원장, 또 전남도지사를 역임하면서 국산 농산물의 대표인 쌀 소비 촉진을 홍보하기 위해서도 막걸리를 예찬했다.
이 총리의 막걸리에 대한 애정은 나라 바깥까지 소문(?)이 나기도 했다. 지난 3월 몽골·중국 순방 당시 몽골의 오흐나 후렐수흐 총리는 환영 만찬주로, 이 총리의 고향인 영광 막걸리를 준비하는 치밀함으로 이 총리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 총리의 막걸리는 이번에 대한해협을 건너갔다. 역시 목표는 소통이다. 한국 총리실도, 일본 정부도 ‘막걸리 선물’에 대한 반응은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 총리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은 일본 측도 막걸리 선물의 의미는 충분히 파악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일 간에도 소통의 길 넓어질까
지난 24일 이 총리와 아베 총리의 도쿄 회담에서 확연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 속에 어렵게 성사된 만남이었지만, 한일 사이에 놓여 있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수출규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등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측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이번 회담에서도 “국제법 위반”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이 총리를 압박했다. 일본 정부도, 일본 기업도 배상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기존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총리와 아베 총리는 회담 후 “현재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중요한 한일 관계를 이대로 방치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 당국 간 의사소통을 계속해 나가자”고 밝혔다. 소통의 필요성은 인정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 총리는 “얼음장 밑에서도 강물은 흐른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대화가 좀 더 “공식화할 것”이라고도 기대했다.
일본 측에서도 미약하나마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25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은 전날 오후 민영 후지TV 계열 위성방송인 BS후지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서로 요청을 받으면 회담해야 한다”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문부상은 “젊은이들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상황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정치가 냉정해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도 기자회견에서 한일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한국이 환경을 갖출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 고위 당국자 역시 이날 “강제징용 관련 양측의 입장 차가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당국자는 이 총리와 아베 총리의 회담을 계기로 공식적인 외교 채널에 힘이 실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일정상회담 개최가 쉽지는 않지만 이와 관련한 소통은 앞으로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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