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된 식재료는 깊은 풍미를 자아내고, 식감 역시 부드러워 소화하는데 큰 부담이 없다. 본연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도록 돕는 숙성의 미학은 흔히 생선회를 떠올리기 쉬운데, 우리가 일상에서 섭취하는 고기에도 숨겨져 있다.
고기 전문점에서는 일찍이 '숙성'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고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고기의 숙성은 가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사후경직이 풀리고 조직이 연화되면서 근육에 있는 카뎁신 효소에 의해 단백질이 가수분해되어 고기의 풍미를 향상시키는 유리아미노산과 펩타이드가 생성된다고 알려졌다.
다만, 모든 고기가 전부 숙성 기간을 거쳤다고 훌륭한 맛을 내는 고기로 탈바꿈되는 것은 아니다. 숙성 기간과 방식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식감과 풍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각자만의 방식과 노하우로 재워 두고 방치해두는 것이 숙성이지만, 고기 참맛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선 숙성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이 뒷받침되는 전문 식당을 방문해야 한다.
충북 청주시 복대동에 소재한 ‘조선현방’은 육가공 분야의 다양한 노하우를 쌓은 육가공 전문가와 함께 올바른 육류 소비문화를 위해 스스로 푸드큐레이터를 자처한 부부가 직접 운영하는 발효 숙성 전문 식당이다.
매장 앞을 들어서자 마자 다양한 품종의 고기가 진열 돼있다. 그중에서도 항아리와 유산균을 이용해 발효 숙성한 이색 메뉴 ‘항아리 발효 삼겹살’이 눈길을 끈다. 이는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추출 배양한 식물성 유산균을 고기에 투입시켜 발효한 후 항아리(옹기)에 넣어 저온 숙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삼겹살이다.
숙성 과정은 총 4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1단계에서는 진공포장 상태로 24시간 동안 1~2도에서 숙성시킨다. 2단계에서는 삼겹살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전처리 후 24시간 동안 -1~0도에서 저온 숙성한다. 3단계에 감칠맛을 극대화하는 유산균 발효액을 골고루 뿌려 15~16도에서 특정 시간동안 발효 과정을 거친다. 마지막 4단계에서는 발효된 삼겹살을 항아리에 넣고 다시 24시간 동안 1~2도에서 후숙성을 진행해 깊은 풍미를 품은 특별한 삼겹살로 탄생시킨다.
항아리는 예로부터 생명의 그릇이라 부른다. 옹기 벽에 생긴 구멍을 통해 산소가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우수한 통기성을 자랑해 가장 이상적인 발효환경을 만들어주고, 발효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유산균을 많이 자라나게 된다. 선조들의 과학적인 항아리 원리를 조선현방은 발효 숙성에 적용시켜 고기도 숨을 쉬게 만든 것이다.
또한, 항아리 숙성 시 돼지고기의 단백질 성분이 유산균에 의해 분해되어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는데, 이 아미노산은 감칠맛을 뛰어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이 덕분에 쫄깃한 식감과 풍부한 육즙을 즐길 수 있고, 돼지 특유의 잡내도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이와 더불어 특별한 양념장에 넣어 재운 항아리 양념 갈비는 숙성한 고기에 유산균 발효 양념으로 숙성해 보다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김동호기자 dongh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