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는 지옥같았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지난 15일 이철희 민주당 의원 역시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둘 모두 여당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다.
‘소신 발언’의 주인공들 역시 법사위 소속이다. 제일 먼저 조 장관을 향해 “후보자의 언행 불일치에 대한 젊은이들의 정당한 분노에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한 금태섭 의원, 가장 최근 당 지도부를 향해 “왜 조국에 대해서 집착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고 쓴소리를 한 조응천 민주당 의원도 법사위 출신이다. 유독 법사위에서 불출마 선언과 소신 발언들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국 수호’에 사라진 ‘공정과 정의’=법사위원들은 조 전 장관 사태를 겪는 67일 동안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와 상반된 목소리를 내는 게 괴로웠다“고 입을 모았다. 표 의원은 불출마 선언 입장문을 통해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정의’만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다는 초심, 흔들리고 위배한 것은 아닌가 고민하고 갈등하고 아파하며 보낸 불면의 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각 상황의 특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언행이었다고 합리화를 한다 해도, 분명 객관적인 ‘정의, 공정 기준’에서 벗어나거나 치우친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 역시 지난 25일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공정과 정의, 기회의 평등이라는 우리 진영의 가치와 배치되는 팩트들이 계속 나오는데 머리와 행동이 따로 가야 돼서 많은 의원들이 괴로워 하신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직접 영입한 인사들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범죄연구소장이었던 표 의원을 삼고초려했다. 청와대에서 나온 후 ‘별주부짱’이라는 횟집을 운영하는 조 의원을 3개월씩 찾으며 출마를 설득했다. 명분은 “정의로운 권력, 바른 정치,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공정과 정의라는 명분은 67일 간의 조국 사태를 겪는 동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조 전 장관의 사모펀드 의혹, 자녀의 입시부정 의혹이 드러나며 민심은 멀어져갔다. 조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인사였고, 법사위원들은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를 외면하면서까지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그를 변호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모든 정쟁의 최정점“ ‘정치 실종’에 대한 안타까움=법사위 관계자들은 “법사위야말로 모든 정쟁의 최정점에 있는 상임위”라고 입을 모은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별 쟁점 현안들이 본회의에 부의되기 전 거치는 ‘최종 관문’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은 각 상임위에서 의결돼 법사위에게 체계자구심사를 거친 후 본회의에 부의된다. 올해만 해도 5·18 특별법, 종교인 과세법, 첨단바이오법 등 쟁점 법안들을 두고 여야가 대결했다.
법사위에 법안이 올라오면 각 장관들이 출석해 “간이 대정부질문”이 재현된다. 장관이 출석하면 각 의원들은 짧게 정책 질의를 한 후 ‘현안 질문’을 하는 전통이 있다. 정책 논의에 초점을 맞추는 타 상임위보다 정치적인 공방이 오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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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출마 의원들은 ‘정치 실종’에 대한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이철희 의원은 “상대에 대한 막말만 선동만 있고 숙의와 타협은 사라졌다”, 표창원 의원은 “국회, 정쟁에 매몰돼 민생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했다”고 했다. 정쟁이 잦은 법사위라는 상임위의 특성이 정치에 대한 환멸감으로, 또 불출마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사위에 잔뼈가 굵은 한 보좌관은 “법사위원들 대부분이 현안에 대한 입장을 다른 상임위원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본인의 입장을 항상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니면 딴 세상 얘기를 해야 한다. 보통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버티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안에 있어 개인의 입장이 아닌 ‘당’의 입장을 얘기하는 고충도 있다. 한 자유한국당 법사위원실 보좌관은 “야당은 공격하는 입장이니까 스트레스가 덜하다. 여당은 방어하는 입장이니까 뻔히 잘못된 것을 알면서 방어를 해줘야 하니까 그런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열’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당내 민주주의 실종’=일각에서는 법사위원들의 불출마와 소신발언이 ‘예견된 결과’였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현권 민주당 의원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나는 일찍이 민주당의 위기는 그곳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걱정해왔다”며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는 정치인에게 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정치환경, 경직되고 운신의 폭이 없고 정치가 실종된 정당이란 견디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불출마는 ‘하나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현재의 민주당 상황이 낳은 결과라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이해찬 당대표 집권 후 ‘원팀’을 강조했다.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는 경험에서 나온 대처였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거쳐 152개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은 ‘거대 여당’이었지만 영향력은 미미했다. 초선 108명이 탄핵 역풍에 힘입어 국회에 입성했지만 저마다 당론과 배치되는 발언을 내놨기 때문이다. ‘108번뇌’라는 비아냥스러운 별칭도 가졌다. 이후 진보정당은 이합집산을 거쳐 통합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18대 총선을 치렀지만 81석이라는 초라한 결과만 낳았다. 지난 2015년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시절 역시 친문-비문 간의 갈등으로 점철됐다. 이종걸 원내대표-문재인 당대표 간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이해찬 당대표를 중심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반성의 결과물이다.
이철희 의원은 지난 25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이 이렇게 무기력하고, 활력이 없는 책임의 상당 부분이 이해찬 당대표에게 있다”고 작심 비판을 했다. 집권 여당 의원 입에서 처음 나온 대표 책임론이다. 이것이 불출마를 선언한 이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후 공천 문제 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책임론’을 꺼내 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연이은 불출마 선언과 지도부 책임론으로 민주당은 한동안 불안정한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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