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난 26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해 “지소미아는 미국에도 일본에도, 그리고 한국에도 유익하다”며 “협정으로 돌아올 것을 한국 측에 촉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소미아 종료 논란이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에서 비롯됐음에도 스틸웰 차관보가 한국의 태도 변화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교도통신·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스틸웰 차관보는 이날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에는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한국에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재검토를 촉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일관계의 중대 분수령이 될 다음달 22일 지소미아 만료일을 앞두고 스틸웰 차관보가 한일 양측의 자제를 요청하면서 미국의 중재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실제 교도통신은 스틸웰 차관보가 “양국에서 창조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을 강력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소미아와 한일갈등은 별개라는 인식이 큰 만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보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닛케이에 따르면 스틸웰 차관보는 “경제적 과제가 안보 과제로 파급돼서는 안 된다”며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문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미국이 중재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최근 한일 간 물밑 대화가 상당 부분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아는 미국이 한국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도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이 나서 지소미아 철회를 위한 일본의 태도변화를 꾀하는 방식으로 미국은 접근하지 않고 있다”며 “결국 한국에서도 강력하게 지소미아가 연장되기를 바란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스틸웰 차관보는 지소미아 종료에도 2014년 체결된 한미일 방위기밀정보공유 각서를 근거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할 수 있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유효하지 않다”며 “(정보 공유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소미아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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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한국 정부의 태도변화를 거듭 압박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한일갈등 국면에서 미국이 한국보다 일본의 입장을 더 챙기는 듯한 발언을 잇달아 내놓는 등 한미일 동맹 균열에 미국의 책임도 있는 만큼 정부가 스틸웰 차관보를 통해 한일관계 복원의 돌파구를 만들어줄 것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신 센터장은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와 관련해 자국의 기준을 높이면서 한국의 철저한 굴복과 양보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과 먼저 논의해야 한다”며 “어느 수준에서 타협할지를 미국과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소미아 종료 압박 외에 스틸웰 차관보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호르무즈해협 호위 동참 등 안보청구서를 우리 정부에 내밀 것으로 예상된다. 박 교수는 “스틸웰 차관보의 이번 방한과 관련해 국무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협력을 언급했는데 그 부분은 우리한테 적지 않은 부담”이라며 “우리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우리의 신남방정책과 연계해 경제적인 관점에서 풀려고 하지만, 사실 미국은 중국 봉쇄 등 군사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이 기여하든지 아니면 방위비 비용을 더 내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스틸웰 차관보는 27일부터 30일까지 미얀마, 30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뒤 태국을 거쳐 다음달 5일 한국에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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