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성립 70주년 기념식이 열린 천안문 광장에는 전임 지도부의 대형초상화와 함께 그들이 성취한 정치적 업적을 담은 대형 조형물이 등장했다. 필자는 성루 옆 한편에 앉아 시진핑 시대의 상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것은 베이징 외곽, 바오딩시에 건설 중인 스마트 도시의 청사진인 슝안(雄安) 신구였다. 건국 70주년 행사 직후에는 이곳을 국가디지털경제 혁신발전 실험구로 선정했고, 10월25일 제18차 당 정치국 집체학습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은 블록체인 기술 서비스와 신형 스마트시티 건설을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중국은 ‘피 묻은 국내총생산(GDP)’이라는 오명을 들으면서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미 2009년 중국은 IBM의 ‘스마트 지구, 중국에서의 승리’라는 보고서에 자극받아 본격적으로 스마트 도시를 정책화했고, 2011년에는 스마트 도시 지표체계 1.0을 만들어 전국 도시의 스마트화를 독려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중국이라는 단일 공간에서 생산된 고품질의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과 결합할 수 있었고 이를 전달할 수 있는 5세대(5G) 이동통신, 위성항법 시스템, 양자컴퓨터 기반을 갖췄으며, 무엇보다 ‘지갑 없는 사회’를 살아온 중국인들의 정보통신에 대한 경험의 결과였다.
중국의 스마트 도시건설은 안정적 불안(stable unrest)에 놓여 있는 중국 사회의 혁신과 중국적 세계화의 모색, 이를 통해 새로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했다. 실제로 가난한 농민들은 소득과 교육의 격차를 이기지 못하고 도시로 몰려들었고, 9.5%에 달하는 노인들은 고독과 빈곤에 노출돼 있다. 포화된 도시는 에너지 소비와 환경오염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삶의 질이 약화된 중국인들은 체제에 대한 신념의 위기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단순히 기존도시를 재생하고 기능적으로 편리한 신도시를 만들거나 해외와 소통이 용이한 글로벌 도시가 아니라, 기술의 풍요를 의료·복지·교육·생활에 접목해 지속가능하고 인간화된 스마트 도시를 건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중국에서는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스마트 교통제어 시스템을 통해 교통 정체율을 낮췄고 AI에 의한 원격의료로 전통의료를 대체했으며, 원격교육 기반 스마트 캠퍼스를 실험했고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해 학생들의 표정을 읽고 교육하는 시스템도 개발했으며, 생체인식 감시망을 재난감시 시스템에 활용하고 인공지능을 통한 민원처리 방식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중국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도시에 먼저 도달하고자 한다. 지속 불가능한 지구를 구하는 중국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선도 기술에 먼저 진입한 국가와 기업이 부가가치의 절반을 가져가는 ‘데이비도 법칙(Davidow’s Law)’의 혜택도 누리고자 한다.
문제는 중국형 스마트 도시가 기술과 인간의 대립, 감시와 통제 그리고 인권침해를 넘어 기술이 인간의 행복을 찾아주는 ‘맞춤형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스마트 도시의 실험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걸으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실험 이후 확산’을 위해서라도 피해를 구제하면서도 실험을 서둘러야 하며, 국제협력을 통해 스마트 도시의 모형을 개발하고 공동의 표준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올해 완전히 새로운 AI에 기초한 국가전략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대학도 인공지능 전문대학원을 세우고 문과생들에게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교육하는 혁신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AI라는 점을 스마트 도시라는 면으로 연결할 수 있는 비전과 로드맵을 함께 갖추는 것이며, 무엇보다 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기득권의 장벽을 허무는 정책적 노력이 중요하다. ‘타다’가 실험하는 공유경제가 ‘내리다’로 전환하는 이유를 깊게 자문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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