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새 성범죄·마약투약·경제범죄 등의 범죄시계가 짧아진 반면 살인·강도 등 강력 사건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높아진 성 의식, 지능형 범죄 증가, 경기둔화 등이 범죄 발생 지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29일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한 ‘5년간 범죄시계’ 자료에 따르면 강간·추행 사건의 입건 주기는 지난 2014년 25분, 2016년 23.7분, 2018년 22.4분으로 점차 짧아졌다. 범죄시계란 범죄 한 건당 평균 경찰 입건 주기를 뜻하며 365(일), 24(시간), 60(분)을 곱한 값을 발생 건수로 나눠 산출한다. 범죄시계가 짧아질 경우 그만큼 입건 빈도가 늘었다는 뜻이다.
마약투약 사건의 경우 2014년 108.9분에서 2018년 80.7분으로, 사기 사건은 2014년 2.2분에서 2018년 1.9분으로 짧아졌다. 횡령도 2014년 14.2분에서 2018년 9.5분에 한 번씩 경찰에 넘겨진 빈도가 꾸준히 상승했다. 최근 5년간 입건 건수가 강간·추행의 경우 10.4%, 마약은 25.9%, 사기는 13.6%, 횡령은 33% 늘었다. 반면 살인·강도·폭력 사건의 범죄시계는 이전과 비슷하거나 다소 느려졌다. 살인은 2014년 575.1분마다 발생했지만 2018년에는 659.5분마다 일어났다. 강도 사건도 2014년 331.4분에서 2018년 640.2분으로 주기가 길어졌다.
성범죄 입건 빈도가 높아진 것은 ‘고발 문화’ 정착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적 피해를 당하면 대부분 외부에 알려질까 쉬쉬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용납하지 않는 추세”라며 “일부 시민들의 왜곡된 성적 가치관도 성범죄가 꾸준히 발생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마약투약 사건의 증가는 인터넷 등으로 누구나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마약 검거 건수는 2015년 7,302건에서 지난해 8,107명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올해는 7월 기준 7,033명이 적발됐다. 오 교수는 “최근 해외 직구가 유행하면서 마약도 직구로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등 마약의 유통경로가 다각화했다”며 “중독성이 강한 마약의 특성상 재구매율이 높다는 점도 입건 빈도를 높인 요소”라고 꼬집었다. 사기나 횡령 등 경제범죄의 경우 경기가 둔화된 요인이 크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한탕’을 노리고 사기를 치는 이들이 늘어나 경찰에게 덜미를 잡히는 사례도 늘었다”면서 “보이스피싱범 검거가 잦아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해석했다.
경제범죄의 범죄시계가 빨라졌다는 점은 살인·강도·폭력 사건의 범죄시계가 느려진 것과 연관돼 있다. 살인이나 강도와 같이 ‘몸을 써서’ 하는 범죄는 사기처럼 ‘머리를 쓰는’ 범죄에 비해 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범죄자들이 위험을 회피하게 되면서 대면 범죄는 줄고 비대면 범죄는 늘었다”면서 “살인이나 강도 등은 범죄자 입장에서는 과거보다 발전한 수사기법 때문에 잡힐 확률이 높으므로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죄시계가 느려지게 하려면 범죄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답”이라며 “마약 사건을 예로 들면 처벌을 강화해 공항이나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전달책 등 공급을 줄이면서 수요도 함께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조·김인엽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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