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이 없었다면 한국 영화는 30~50년은 앞서갔을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50년 전에 나왔을 겁니다.”
영화계의 원로인 김수용 감독은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전시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50년이 넘게 영화를 찍는 동안 검열로 잘린 필름 수로 부산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이장호 감독도 “검열은 난센스였다”면서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흙수저의 자수성가 입지전처럼 검열이라는 고난을 견뎌내면서 한국 영화가 번영을 이룬 것 같다”고 평가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두 감독은 1960~1980년대 서슬 퍼런 검열을 직접 겪으면서 한국 영화를 지탱해온 원로들이다. ‘유정(1966년)’ ‘가위바위보(1976년)’ ‘화려한 외출(1977년)’ ‘만추(1981년)’ 등을 연출한 김 감독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당시에는 자르라면 잘랐는데 그것도 지나니까 역사가 됐다”며 “당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에서 다양성을 기반으로 자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이 남의 영화를 잘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도 김 감독의 말을 받아 “영화 속에 ‘영자’와 ‘순자’가 나오는 노래가 있었는데 당시 대통령 부인 이름과 같다고 ‘순자’를 삭제하라고 했다. 그런데 저는 ‘ㅅ’만 잘라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며 “그렇게만 잘라도 관객들이 웃을 정도로 검열은 난센스였다”고 강조했다.
영상자료원은 내년 3월22일까지 한국 영화 검열제도의 변천사를 담은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을 개최한다. 이 전시에서는 검열 서류, 관계자 증언 영상 등의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1920~1990년대 한국 영화계의 그늘진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