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대회에 나서는 경험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감사한 마음으로 이번 주를 즐기고 싶어요.”
지난해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4년 차에 첫 우승을 달성한 박결(23·삼일제약). 1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 서귀포의 핀크스 골프클럽에서 30일 서울경제와 만난 그는 “지난해 마지막 날 경기를 마친 뒤 혹시 모를 연장을 기다리던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며 웃어 보였다.
우승 확정 순간이나 시상식이 아니라 먼저 경기를 마치고 대기하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만큼 간절했고, 간절했던 만큼 긴장했기 때문이란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에 KLPGA 투어 시드순위전 1위 출신인 박결은 정규투어 데뷔 이후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4년간 우승 없이 준우승만 여섯 번이었다. ‘올해도 안 되겠구나’ 싶었을 때 첫 우승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지난해 서울경제 클래식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에 8타나 뒤진 공동 10위였는데 마지막 날 강한 바람 속에서도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잡아 1타 차로 우승했다. KLPGA 투어 최다 타수 역전 우승 타이기록도 함께 세웠다. 선두로 먼저 경기를 끝내놓고 연장 가능성에 대비하며 퍼트 연습을 하던 박결은 우승 확정 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눈물을 쏟았다. 이후 “1승도 못했는데 기사만 많이 나온다는 댓글이 가슴 아팠다”고 털어놓았던 박결은 골프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아시안게임 금메달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으로 ‘업데이트’했다.
지난해 우승으로 얻은 상금(1억6,000만원)과 숙박 지원 등 디펜딩 챔피언에게 주어지는 특전도 좋지만 박결이 가장 반가워한 것은 2년 시드(출전권)다. 시즌 상금랭킹 상위 60위 안에 들지 못하면 1부 잔류냐, 2부 강등이냐를 놓고 시드순위전을 치러야 하는데 박결은 지난해 우승으로 2020시즌까지 시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박결은 “사실 올 시즌은 데뷔 이후 가장 안 풀리는 시즌이다. ‘이렇게 안 될 수도 있나’ 싶을 때도 있었다”고 돌아보며 “올 시즌 남은 일정을 최대한 잘 마무리하고 겨울 전지훈련부터는 강도 높은 연습에 들어갈 것이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정말 악착같이 저 자신을 몰아붙일 계획”이라고 힘줘 말했다. 지난 시즌 상금 14위였던 박결은 올 시즌에 상금 51위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우승이 아니었다면 내년 시드를 장담할 수 없었을 상황이다. 라운드당 퍼트 수 2위(29.80개), 페어웨이 안착률 2위(83.65%)를 기록하고 있지만 드라이버 샷 거리(223야드·112위)가 따라주지 않아 역부족일 때가 많다. 기록상으로 지난 시즌보다 10야드가 줄었다.
박결은 “늘 드라이버 샷 거리가 아쉬웠는데 올 시즌은 더 심했다”면서 “시드 걱정이 없으니 연습했던 부분들을 경기 중에 과감히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생각만큼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다. 시즌 뒤 코치님과 미국에 들어가 내년 시즌을 위한 승부수를 던지겠다”고 했다. 그는 “1년 전이 새록새록 떠올라 설렘이 크다. 내년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이곳에 오고 싶다”며 웃었다.
/서귀포=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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