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을 잡기 위해 꺼낸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카드가 되레 아파트 값을 올려놓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자금조달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또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을 발표할 때 보완책도 함께 내놓겠다고 했다. 사실상 상한제 외에 추가 대책을 예고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시장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한 규제로 정책효과는 보지 못하고 또 다른 규제만 추가되는 모양새라고 비판한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상한제가 역효과를 내자 정부가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염두에 둔 정책을 시행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매물 부족 심화 등으로 연결되면서 시장만 더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한제가 집값 올렸는데… 또 칼 빼든 청와대=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가격 급등 아파트에 대해 자금조달 전수조사라는 강수를 둔 것은 분양가상한제 공론화 이후 서울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 불안세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한제가 거론되면서 거래절벽 우려가 커졌고 이것이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상한제의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값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공론화하기 시작한 지난 6월 하순 이후부터 계속 올라 지난주까지 13주 연속 상승했다. 상한제 공론화 이전에는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했다.
서울에서는 강남 아파트 값 3.3㎡당 1억원 시대가 열렸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가 5월에는 25억원(11층)에 계약이 이뤄졌는데 지난달에는 32억원(9층)에 매도됐다. 반포동 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실거래가 신고가 정확하게 나와 봐야 알겠지만 최근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가 34억원에 거래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강북도 들썩이고 있다. 영등포구 신길동 보라매 SK뷰 59㎡는 5월 8억2,800만원(27층)에 거래됐다가 지난달 10억5,148만원(24층)으로 2억원 이상 뛰었다. 또 마포구 공덕동 공덕자이 59㎡도 4월 10억1,000만원(13층)에서 지난달 11억9,000만원(10층)으로 1억8,000만원이나 올랐다.
최근에는 서울 집값이 남하하면서 광역시도 꿈틀거리고 있다. 2년 넘게 하락세를 이어온 울산 아파트 값이 상승세로 돌아서고 대구 아파트 값이 다시 오르는 등 지방 아파트 값마저 꿈틀거리고 있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시장에서는 상한제를 공급부족 신호로 받아들이며 20~30대도 아파트 매수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상한제 역풍 보고도 또 규제 나오나=전문가들은 이번 발언을 사실상 상한제 외에 추가 대책을 예고한 것으로 분석한다. 문제는 상한제의 역풍을 보고도 같은 실수를 범하는 대책을 내놓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점이다. 서울 등 주요 지역의 공급 부족이라는 문제를 풀지 않는 현재와 같은 수요억제 정책으로는 집값이 다시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 A씨는 “이미 지난주부터 고가주택이나 거래가 빈번한 지역의 자금조달계획서를 조사하고 있다. 김 실장의 오늘 발언은 이러한 정부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집값 불안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평했다. 이어 “전수조사 실시 지역의 경우 일시적 안정은 있겠지만 장기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며 “공급부족과 수요 과잉으로 오르는 것인 만큼 도심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 B씨는 “핀셋 규제의 일환으로 보인다. 특정 지역의 시장 교란 세력에 대해서만 타깃으로 때리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하지만 부동자금이 1,100조원이나 되는데 엄포 갖고는 되지 않는다. 부동자금 분산 대책들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효과는 단발성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정부의 잇단 부동산 시장 규제책에 대해 허탈감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가 잇단 규제로 시장을 왜곡하면서 거래절벽과 후분양·일반분양 통매각 같은 부작용이 럭비공처럼 튀어나오고 있다”며 “시장을 왜곡한 것은 정부인데 시장에 책임을 지라고 하는 꼴”이라고 일갈했다. /박윤선·이재명·권혁준기자 sepy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