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정(19·한화큐셀)은 요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가장 뜨겁고, 그래서 가장 무서운 선수다. 시즌 중반까지 컷 탈락을 반복하다 8월 말 데뷔 첫 우승을 달성한 뒤로 10월까지 매달 1승씩을 쌓았다. 두 달 새 3승. 신인이 데뷔 시즌 3승을 거둔 것은 2014년 백규정 이후 5년 만이다. 다승 2위, 상금 4위의 임희정은 신인상 포인트 2위에서 역전 신인상도 노린다. 오는 3일까지 제주 핀크스 골프클럽(파72)에서 계속되는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이 마지막 승부처다. 평소 늘 진지한 표정이던 임희정은 1일 ‘서경 클래식 18문 18답’과 만남에서는 시원한 웃음을 거푸 터뜨리며 유쾌한 답변을 이어갔다.
-올 시즌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나 주고 싶은가. 그 이유는.
△95점요. 25개 대회에서 3승 포함 7번 톱10에 들었는데 100점에서 5점이 깎인 것은 컷 탈락(일곱 차례)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래요.
-올해 자신한테 해준 가장 큰 선물은.
△전반기 끝나고 귀 뚫은 일인 것 같네요. 그 후로 귀걸이를 잘하고 다니고 있어요. 예쁘고 독특한 볼 마커를 모으는 것도 좋아해요.
-올해 들어본 최고의 칭찬은 뭔지.
△퍼트 잘한다는 얘기요. 동료들한테 퍼트 레슨 해달라는 얘기까지 듣고…. 얼마 전만 해도 지독하게 안 되던 게 퍼트였는데 요즘은 인정받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성격은.
△낯을 가리는데 친해지면 장난기가 발동해요. 나중에 혈액형이 AB형이라고 밝히면 그런 줄 알았다고 하는 분도 있어요. 눈빛이 AB형 같대요.
-‘사막여우’ 별명은 어떻게 생긴 건지.
△아마추어였을 때 박현경 선수가 붙여준 건데 프로 와서 그대로 굳어졌어요.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골프 말고 가장 잘하는 것은.
△사실 없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골프밖에 안 쳤거든요. 대회 끝나면 노래방에 자주 가긴 해요. 아델의 ‘롤링 인 더 딥’이랑 비와이의 랩을 즐겨 해요.
-특별한 징크스가 있다면 말해달라.
△4번 공을 일부러 쓰면서 징크스를 없애는 중이에요. 하이원리조트 대회도 4번 공으로 우승했어요.
-비시즌은 어떻게 보낼 것인지.
△체력 훈련해야죠. 되도록 국내에 오래 있으면서 체력 훈련에 집중하고 해외 전지훈련은 짧게 다녀오려고요.
-하루 동안 완벽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
△맛집 투어요. 서울에 먹을 게 많더라고요(임희정은 태백 출신이다).
-평소 쉴 때는 뭘 하는지 궁금하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중계를 봐요. 타이거 우즈랑 토미 플리트우드를 가장 좋아해요. 특히 플리트우드의 스윙에 꽂혀 영상 계속 돌려보면서 감탄합니다. PGA 투어를 보면 지금의 제 경기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극도 됩니다.
-해외 투어 진출 계획은 있는지.
△3년 정도 더 국내 투어에서 뛰면서 경험을 쌓고 내공도 쌓는 게 우선이죠. 지난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BMW 챔피언십 공동 6위)에 나가 보니 제가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분위기 적응이나 언어 등 모두 다요. 준비가 되면 3대 투어를 다 뛰어보고 싶어요. 일본 투어 대회는 아마추어 때 나가본 적이 있는데 톱10에 올라서 베스트 아마추어상을 받은 기분 좋은 기억도 있고, 연습이나 대회 환경이 아주 잘 돼 있어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골프가 싫었던 기억도 있는지.
△지난해 아시안게임 때 금메달을 못 따서(은메달 획득) 그 무렵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퍼트가 지독하게 안 되던 올 시즌 초반도 힘겨웠는데 두세 번 바꾼 끝에 잘 만난 퍼터와 후반기 내내 함께하고 있습니다.
-골프 선수가 아니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상상해본 일이 있는지.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고 다른 구기 종목 선수를 꿈꾸고 있을 것 같은데요.
-‘죽기 전에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 하는 나만의 버킷리스트는.
△브리티시 여자오픈 출전하는 거요. ‘골프성지’라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릴 때 나가면 더 좋겠고요. 스코틀랜드 대회에 딱 한 번 나간 적이 있는데 무섭게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서 기술적으로 낮게 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공부도 되고 재밌었어요.
-18홀 라운드 기회가 딱 한 번 남았다면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
△당연히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죠.
-요즘 자신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지.
△연말 시상식이 다가오는데 주변에서는 살 빼지 말라고 말리는 상황이에요. 사실 작정하고 살 뺄 시간도 없긴 합니다.
-올 시즌 투어 안팎에서 ‘이것만은 꼭 지켰다’ 하는 습관이 있나.
△꾸준한 퍼트 연습요. 숙소에서도 매트 깔고 연습했어요. 귀찮을 때도 많았지만 거르지 않았어요.
-훗날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승부에는 독하지만 평소에는 예의 바른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신지애 선배님이 롤모델입니다. 어릴 때 선배님 아버지께서 내신 책도 읽었어요. 그리고 언젠가 은퇴하더라도 대회장은 떠나기 싫어요. 골프단 감독으로 계속 투어를 지키는 것도 멋질 것 같습니다.
/서귀포=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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